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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삼국지 경영학 (1) - 조조

삼국지 경영학 (1) - 조조


창업형 CEO와 수성형 CEO

결단력 ·인재 운용술은 필수상황에 맞는 리더십 갖춰야..



  조조 ·유비 ·손권 세 사람은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국가 경영 스타일도 달랐지만, 출중한 리더십이 있어 사람이 따랐고 인재를 잘 썼다는 공통점이 있다. 큰 일을 이루는 CEO는 인재를 중시하는 한편 시대 상황을 잘 읽고 이에 부합하는 경영 방식을 밀고 나간다. 삼국지는 조조(曹操) ·유비(劉備) ·손권(孫權)이라는 세 사람의 영웅을 중심으로 한 사투의 역사다. 힘과 지모로 싸우는 것도 있고 덕(德)과 인심으로 싸우는 것도 있다. 적과 동지가 따로 없다. 그때 그때 이해관계에 따라 싸우기도 하고 연합하기도 한다. 언제 싸우고 언제 연합하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승자가 되는 비결이다. 그러기 위해선 상황판단과 이해득실에 밝고 냉철해야 한다. 난세에 살아남기 위해선 좋은 부하가 많아야 한다.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부하도 있어야 하지만 기계(奇計)나 모략 등 변칙에 능한 인재도 필요하다. 얼마나 다양한 재주의 부하를 모으고 활용하느냐는 승패의 갈림길이 된다. 그것은 군주, 즉 국가 CEO의 그릇에 따라 좌우된다. 큰 그릇이면 각양각색의 인물을 잘 감별하고 포용하고 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있는 인재도 놓치고 만다. 오늘날의 기업경영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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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중 패자(覇者)라 할 수 있는 조조는 사람을 매우 잘 썼다. 적 진영에 있던 사람도 유능하면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조조가 초기에 원소(袁紹)와 중원을 놓고 각축을 벌일 때 투항해온 원소 측의 핵심참모를 믿고 잘 쓴 것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원소는 참모들의 좋은 건의를 못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그들을 푸대접했기 때문에 좋은 인재들이 그의 곁을 떠났다.  

 조조 ·유비 ·손권은 당시 각지에 할거했던 군웅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두 출중한 인물이다. 세 사람 모두 리더십이 있어 사람들이 따랐다. 사람 욕심이 많고 일단 자기 사람이 되면 믿고 썼다. 밑의 사람이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재능도 출중했다. 그러나 조금씩 우열과 강점 ·약점은 있다. 세 사람을 비교할 때 조조와 유비는 창업자 오너형이고 손권은 승계한 2세 오너다.   조조는 스스로 창업했지만 원래 기반이 있는 집안 출신으로 일찍부터 천재성을 드러냈고 출세도 빨랐다. 집안도 번성하고 인물도 많았다. 삼국지에서 이름을 날리는 조인 ·조홍 ·조진 ·하후 ·하후연 같은 맹장이 모두 같은 집안이다. 조조는 원래 하후(夏候)씨였는데 아버지 대에서 조씨 집안으로 양자를 갔다. 이들 친족은 평생 조조를 극진히 모시고 조조 세력의 기둥이 된다. 조조는 처음부터 상당한 기반을 갖고 출발한 것이다. 든든한 친족들과 집안의 경제력, 게다가 본인 자신이 뛰어난 재능을 갖췄기에 조조는 만사에 자신이 있고 적극적이다.  





조조, 모든 권력 쥐었지만 대권은 고사  

 조조는 초기엔 집안사람들에게 많이 의존했지만 세력이 커짐에 따라 외부의 유능한 인재들을 과감히 수혈했다. 친족 조직의 한계를 조조는 잘 알았던 것이다. 그런 안목과 결단이 바로 조조의 위대한 점이다. 그러나 집안의 약점도 있었다. 조조의 아버지는 환관의 양아들로 아주 돈이 많아 한나라 말기 세상이 문란할 때 돈으로 높은 벼슬을 샀다. 그 때문에 조조는 젊었을 적엔 정치적으로 곤란한 입장에 빠지기도 했다. 한나라 말기 외척 ·환관 ·제후들이 물고 물리는 사투를 벌였는데 그때마다 조조의 처지가 묘했던 것이다.  바른말을 해도 환관 편을 든다는 오해 때문에 한발 물러서야 했다. 또 평생 환관의 후예라는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다.


 그것이 조조를 더 성숙하고 신중하게 한 점도 있다. 약점과 강점은 돌고 도는 것이다. 조조가 비록 실권을 주지 않았지만 한나라 황제를 끝까지 모시고 스스로 황제가 되지 않은 것도 그런 데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아무래도 대의명분이 약했던 것이다.  천자를 끼고 있어야 천하의 제후들에게 호령할 명분이 서는 것이다. 조조가 대권을 차지하라는 상소를 받고 “저 사람들이 나를 뜨거운 난로 위에 올라가라 한다”며 물리친 것도 세상 인심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원소의 동생 원술(袁術)이 천자를 자칭했다가 천하의 제후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결국 자멸하고 만 선례가 있다.  



 
국가나 기업이나 좋은 평가를 받고 에너지를 모으려면 대의명분이 매우 중요하다. 헨리 포드가 포드자동차를 시작할 때 “평균적인 미국 사람이 살 수 있는 저렴하고 안전하고 빠른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대의명분을 걸었고, 마쓰시타(松下)전기의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는 “일본 가정에서 가전제품을 수돗물처럼 쓸 수 있게 하겠다”는 수돗물 철학을 내걸었다. 한국에서도 “첨단 전자산업을 개척하겠다”든지, “중화학공업의 견인차 노릇을 하겠다”는 명분을 내건다.  



 기업의 본질이 영리 추구에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고, 근사한 명분이 있어야 초일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의명분이 좋아야 좋은 사람을 모을 수 있다. 손권은 아버지 손견(孫堅)이 강동 땅에서 패업의 기초를 닦았고, 형인 손책(孫策)이 그걸 이어받아 넓혀 나가다가 젊어 죽었기 때문에 갑자기 오나라의 주인이 된 사람이다. 19세 때의 일이다. 손책이 임종 때 “때를 잘 보아 싸움을 벌이고 천하를 다투는 일은 네가 나보다 못하지만 좋은 사람을 모아 중지를 모으고 나라를 보전하는 데는 내가 너를 당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손책 자신은 창업형 군주지만 손권은 수성형이니 그걸 명심하라는 뜻이다. 손권은 형의 당부를 충실히 지킨다. 손권이 승계했을 땐 이미 조조가 중원을 평정하고 천하통일을 꿈꾸던 때다.  

 세 사람 가운데 유비가 가장 불리한 여건에서 출발했다. 그야말로 시골의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돈도 없고 친족도 거의 없다. 나중에 황족 출신이란 것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대외 선전적 성격이 강하다. 당시보다 300년 전인 한나라 초기 경제(景帝)의 아들 중산왕의 후예라는 것인데, 경제는 아들만도 100명이 넘는 황제였다. 유비 때에는 이미 가세가 기울어 시골에서 겨우 돗자리를 팔고, 시장에서 임협(任俠)의 두목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처지였다.  

 유비는 한실 부흥이라는 명분을 내걸었기 때문에 한나라 황족의 후손이라는 것은 좋은 대의명분이 됐고, 또 큰 신통력을 발휘했다. 유비가 유명해지면서 전국의 유씨 성을 가진 제후는 물론 황실에서도 큰 도움을 주고 호의를 베푼다. 한나라 때엔 유씨 성을 가진 황족이 아니면 왕이 못 되었고, 황실의 도덕적 권위는 한 말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황족이란 것 외에 유비는 그야말로 맨주먹으로 일어나 패업을 이룩했고, 마지막엔 촉나라를 세워 황제가 되었다. 고생도 가장 많이 했다. 유비가 대중적 인기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유비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 50대가 되어서야 겨우 기반을 잡았다. 그 전엔 몸을 기탁할 곳을 찾아 중국 천지를 전전했다. 맨주먹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항상 신중하고 겸손했다. 이 점이 바로 유비의 인간적 매력이고, 그래서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유비를 따랐다. 그 기나긴 어두운 세월 속에서도 큰 뜻을 잃지 않고 은인자중하여 결국 패업을 이뤘으니 위대하다 할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도 유비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고 동정적이다.  




 우리나라 기업가 가운데에서도 창업형과 승계형은 성격이 다르다. 창업 1세는 과단성이 있고 기민하며 사람을 잘 쓴다. 그렇지 못하면 창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주 계산적이고 냉철했지만, 가끔 깜짝 놀랄 정도의 인정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바로 밑의 사람들이 반하는 것이다. 큰 기업을 이루기 위해선 남자가 남자에게 반하는 인간적 매력이 필요하다. 승계형은 인화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업을 물려받으면 창업자와 같이 일한 사람이 남아 있고, 기존 조직을 잘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화합 중시의 원만형이 되는 것이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나 현대 창업자 정주영 회장과 SK 최태원 회장 ·LG 구본무 회장은 각기 개성과 경영 스타일이 다르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진화와 적응이라고 볼 수 있다.  창업시대는 군웅할거 시대라 볼 수 있는데 그때는 무리와 돌파력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합리와 효율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천하의 질서가 잡히고 나면 더욱 그렇다.  


  위 ·오 ·촉한 세 나라는 오늘날로 비유하면 성공한 다국적 기업이라 볼 수 있다. 그 정도 성공하려면 무수한 고비를 넘겼을 것이다. 조조나 유비는 나라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건곤일척의 싸움을 무수히 치렀고, 자신도 전장에서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가족들이 포로가 되기도 하고 죽기도 했다. 위대한 기업가도 항상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띄운다. 
그것이 성공하면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고 실패하면 망한다. 엉거주춤한 것을 가장 싫어한다. 오늘날 내로라하는 초일류기업들도 몇 번은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사운을 건 투자가 없으면 비약적인 발전도 없다. 80년대 삼성의 반도체 투자나 70년대 현대의 중동 건설 투자가 대표적이다. 조조나 유비에 비해 패업을 물려받은 손권은 비교적 순탄한 과정을 겪었다. 조조나 유비가 항상 도전하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면서 천하의 주인 자리를 노리는 데 비해 손권은 다소 수비적이다. 천하통일보다 영지인 강남의 보전에 주력했다. 당시는 천하대란 시절이었기 때문에 공세를 취하거나 망하거나 해야지, 엉거주춤하면 결국 소멸하고 말았다.  



 천하의 요지인 형주 땅을 차지하고도 결국 1대로 망해버린 유표(劉表)나 자식의 병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치는 원소(袁紹)가 대표적이다. 조조가 창업자 오너답게 신상필벌을 엄격히 하고 만기총람(萬機總攬)형으로 나라를 다스린 데 반해 손권은 부하를 신뢰하고 인화를 중시하는 합의형이었다. 오나라 자체가 여러 세력이 뭉친 부족연합적인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의 통치방법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삼성과 LG의 지배구조나 기업문화가 약간 다른데 그것도 위나라나 오나라 같이 생성과정과 CEO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같은 창업자 오너이지만 촉나라의 유비는 인정과 의리의 요소가 강하고 권한위임형이었다. 유비는 행정이나 외교 같은 분야는 밑에 맡기는 스타일인데 군사 분야만은 자신이 많이 챙겼다.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유비는 한나라를 창건한 유방과 닮은 데가 많다. 밑바닥에서 자기 실력으로 올라온 것이나, 사람을 믿고 쓰는 것이나, 통 크고 후한 것이 비슷하다. 그러나 유방은 천하를 통일한 데 비해 유비는 실패했으므로 한 수 아래라는 평가가 있다.  
지략과 용인술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만기총람형이 좋은지 위임형이 좋은지는 정답이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만기총람형이 되려면 스스로 명석하고 정력적이어야 한다. 평가시스템이 정확하고 냉철해야 한다. 위임형은 사람을 잘 보고 관대해야 한다. 그 대신 부하들이 스스로 최선을 다하게끔 하는 인품과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이런 절묘한 조합이 잘 이뤄질 때 국가나 기업은 성공하고 번성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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