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경영학 (19) - 유비 :: 2007. 5. 19. 01:03



유비의 부드러운 용인술



큰 그릇서 우러난 천부적 仁德

부드럽지만 거역 못할 힘 발휘



유비의 위대함은 공명을 모셔 온 후에 더욱 빛난다. 삼고초려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모셔 온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기존 조직과의 조화를 기하면서 공명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유비 진영은 무장으론 관우, 조운이 있고, 참모로는 미축 ·간옹 ·손건이 있었다. 이들은 유비가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고난을 같이하며 따라다닌 창업동지다. 유비로선 절대 괄시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27세의 새파란 공명이 파격적 대우를 받고 수석참모로 왔으니 유비 진영에 긴장관계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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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세계에서도 유능한 신참자가 발을 붙이기는 매우 어렵다. 대기업일수록 관료화돼 기득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새 피를 수혈하지 않으면 조직이 정체되고 만다. 그래서 좋은 인재를 모셔와 그 인재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CEO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이 점을 철저히 챙겼다.  처음 삼성전자에서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때 세계적인 전문가를 데려오려면 당시 사장보다 더 많은 봉급을 주어야 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 같은 국제적인 일을 하려면 국제적인 기준으로 해야 한다면서 당시로선 파격적인 대우로 전문가를 데려오게 했다.  그리고 전문가가 능력껏 일할 수 있도록 세심히 챙겼다. 또 그룹 경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획실장을 외부에서 데려오기도 했다. 한 번은 외국대학의 교수 출신을, 한 번은 경제관료 출신을 앉혀 새 바람을 일으키려 했다. 그 전통은 2대까지 계승돼 삼성을 초일류회사로 키운 인재 중에는 외부 영입파가 많다. 지금도 초특급 인재들을 사장들이 직접 나서서 파격적 대우로 모셔오게 하고 그것을 사장들의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유비는 공명과 같이 돌아오자 항상 붙어 지낸다. 이때 유비는 공명으로부터 천하경영에 대한 집중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그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고 공부도 많이 했을 것이다. 유비의 장점은 필요한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점이다. 정사 삼국지에는 유비가 학문에 별 취미가 없고 노는 것과 음악, 옷차림 등에 관심이 많았다고 돼 있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과 비슷하다. 그러나 둘 다 참모의 말을 잘 듣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결단력이 뛰어났다.  유비가 하도 공명과 붙어 지내니 가신들이 불평을 했다. 이땐 대개 성미가 급하고 솔직한 장비가 나섰다. 관우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 승복도 하지 않았지만 드러내놓고 불만도 하지 않았다. 순수한 군인인 조운은 자기 일만 했을 가능성이 크다. 장비가 유비에게 불평을 한 즉 유비는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 지금 내가 많은 것을 배우는 중이므로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말라”고 못을 박는다. 마침 그때 조조군이 쳐내려 온다. 북쪽 지방을 평정한 조조가 드디어 남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유비가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묻자 장비가 대뜸  "물보고 막으라 하면 될 거 아니요”라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동안의 불만이 터진 것이다. 유비는 "내가 지모는 공명을 믿고 무용은 그대들을 믿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고 꾸중을 한 다음 공명에게 지휘권을 준다. 공명은 첫 전투 지휘에서 기막히게 성공해 무장들을 놀라게 한다. 장비는 금방 승복했으나 관우는 반신반의한다. 소설 삼국지엔 공명이 관우 때문에 힘들어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관우, 장비, 유비와 의형제까지 맺은 특별한 사이였기 때문에 공명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중국 성도(成都)에 가면 무후사(武侯祠)가 있는데 그곳은 유비와 공명을 모신 사당이다. 유비의 묘인 혜릉(惠陵)도 있다. 유비를 비롯한 촉나라 핵심인물들의 인물상과 관련 역사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유비의 사당 앞엔 신하들의 인물상이 문신과 무신 코너로 나뉘어 14명씩 전시돼 있다. 문신 쪽엔 방통, 무신 쪽엔 조운이 맨 앞에 있는데 관우와 장비는 별격 대우를 받아 따로 모셔져 있다. 공명은 아예 사당이 별채로 차려져 있다.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신하이기도 했지만 혈육과 같은 관계였고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그런 대접을 받았다.



 
유비도 이들 창업동지, 특히 의형제와 공명의 관계 때문에 고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바로 유비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데,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이들을 잘 끌고 나간다.  유비 밑에 모여든 다양한 인물들이 서로 충돌을 하면서도 유비에겐 절대적 충성을 바쳤다. 유비는 사람들의 마음속 기미(幾微)를 잘 알아 알게 모르게 배려하고 다독거렸다. 또 스스로 나설 때와 모른 척할 때를 잘 알았다.  유비는 일하는 자리와 대우하는 자리를 잘 구별해서 썼다.비는 충실한 가신인 미축에겐 한동안 공명보다 윗자리를 주었다. 그 대신 결코 군사를 맡기지는 않았다. 미축은 지방의 부호로서 유비가 어려울 때 전 재산을 털어 바쳤고, 누이를 유비의 후처로 주었으나 싸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렇듯 유비는 각기 재능에 따라 사람을 쓰고 전체의 조화와 화목을 세심히 배려했다.




 
관우는 유비 진영의 선임 장군이었다. 공명이 유비 진영을 지휘하기 위해선 관우를 승복시킬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동원된 것이 바로 화용도(華容道) 싸움이다.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적벽(赤壁)에서 조조군을 깨친 후 패잔병을 추격할 때다. 공명이 각 무장에게 임무를 주는데 관우에겐 끝내 아무 말이 없었다.  관우가 왜 나에겐 임무를 안 주느냐고 하자 공명은 시침을 딱 떼고 "장군에겐 조조를 붙잡는 아주 중대한 임무를 주고 싶으나 옛날 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그냥 살려 보낼까봐 그런다" 고 말한다. 자존심이 강한 관우가  "사사로운 정 때문에 대사를 망칠 것 같습니까" 라며 항의한다. 그러면 조조를 놓치면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군령장(일종의 서약서)을 쓰겠느냐고 하자 관우는 두말없이 군령장을 바친다. 공명은 조조가 반드시 화용도를 지나갈 것이니 미리 매복해 있다가 잡으라면서 만약 화용도로 가지 않을 땐 자기가 처벌을 받겠다는 군령장을 썼다. 구진영 대표와 신입 공명의 대결이었다.



  관우가 떠나고 나서 유비는 걱정이 돼 "내 아우 관우가 인정이 많아 틀림없이 조조를 그냥 보낼 텐데 어쩌면 좋으냐" 고 걱정을 한다. 공명은  "천문(天文)을 보니 조조의 명운이 다하지 않아 어차피 살아갈 운세이므로 관 장군으로 하여금 옛날 은혜나 갚도록 하는 것도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하고 유비를 안심시킨다. 과연 조조는 화용도로 갔는데 관우가 옛정을 못 이겨 살려 보낸다. 관우가 면목없이 돌아오자 공명은 군령장대로 목을 베라고 호통을 친다. 옆에 있던 유비가 "관우는 나와 생사를 같이하기로 한 의형제이니 내 낯을 봐서 용서하라" 고 청을 넣는다. 유비까지 나서니 공명은 못이기는 척 물러선다. 유비도 공명이 관우의 기를 꺾는 데 한몫 거든 것이다. 신입 공명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이다.




 
삼국지 정사를 보면 조조가 화용도에서 관우에게 사로잡힐 뻔했다는 기록이 없다. 소설 삼국지에선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이 에피소드를 넣은 것으로 보이는데, 삼국지에서 가장 재미있고 광채 나는 장면 중 하나다. 다른 면에서 생각하면 공명이 관우 때문에 고심한 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이 장면이 들어갔다고 볼 수도 있겠다.



 
공명은 유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외교와 행정 쪽에서 진짜 실력을 발휘한다. 유비가 장판파의 싸움에서 비참하게 깨져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 공명은 노숙(魯肅)과 같이 손권에게 가서 군사동맹을 맺고 온다. 빛나는 외교적 승리다. 당시 유비의 군사는 보잘 것 없었는데 오나라에 가서 대등한 조건으로 동맹관계를 맺고 전후 기득권도 인정받고 온다.




 
유비의 일생을 보면 스스로 일을 하기보다 밑의 사람이 목숨 걸고 일을 하게 하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 또 밑의 사람은 유비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CEO로서 타고난 자질이다. 공명이 손권과 담판을 할 때의 일이다. 공명은 손권에게 지금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오고 있으니 항복을 하든지 맞서 싸우든지 둘 중 하나를 빨리 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같이 엉거주춤하다가는 화를 입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유비는 왜 항복하지 않느냐고 손권이 묻는다. 공명은 "조조는 한나라를 뺏으려는 역적인데 천하의 의인(義人)인 우리 주공이 어떻게 항복을 합니까. 이기고 지는 것은 하늘이 정하는 일이고, 우리 주공은 불의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라고 못을 박는다. 손권이 졸지에 불의에 항복하는 사람이 될 판이었다. 당시 유비는 인의와 신의를 지키는 사람으로 널리 소문이 나 있었다. 유비의 이런 명성은 유비 진영의 대단한 자산이었다. 공명이 나중에 유비를 위해 인재를 모을 때도 큰 도움이 됐다. 공명도 그것을 적절히 활용해 젊은 손권을 자극한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손권은 발끈하며 "내가 3대째 강동에 웅거해 10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어떻게 역적에게 함부로 항복할 수 있겠소" 라며 결기를 부린다. 손권 진영 안에서도 주유와 노숙이 항전을 주장해 결국 손권은 유비와 동맹을 맺고 조조와 적벽에서 한판 싸움을 벌인다. 적벽대전에서 승리한 후 손권군이 조조군과 혼전을 벌이는 틈을 이용해 유비는 형주 남쪽 4개군 즉 장사(長沙), 영릉(零陵), 계양(桂陽), 무릉(武陵)을 점령한다. 공명이 전략을 짜고 관우, 조운 등이 모두 한 건씩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천하를 떠돌던 유비가 드디어 자기의 터전을 마련하게 된다. 그 뒤 유비는 손권이 점령하고 있던 형주 남군(南郡)도 빌려 드디어 천하삼분지계의 첫 포석을 놓게 된다. 유비가 형주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위나라 조조는 막료들과 정사를 상의하고 있다가 너무 놀라 들고 있던 붓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오랫동안 잠복했던 용이 드디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본 것이다.




 
유비는 공명의 도움을 받아 염원하던 근거지를 마련했지만 그 전에도 몇 번 기회가 있었다. 즉 형주목 유표가 죽고 아들 유종(劉琮)이 급하게 조조에게 항복했을 때 공명은 유종을 급습해 형주성을 뺏자고 건의한다. 성공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유비는  "내가 유표 형님에게 신세를 많이 졌는데 그 아들을 해칠 수는 없다" 며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피란길에 나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드디어 형주성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때가 유비의 창업기로서 천하경영의 터전을 닦았다. 또 공명의 천거로 많은 인재들을 모았다. 촉한의 유능한 신하 중엔 이때 형주에서 모은 사람들이 많다. 유비는 공명을 신뢰해 대부분 건의대로 했다. 그러나 도리(道理)가 아니다 싶을 땐 고집을 부렸다. 익주(益州)를 점령할 때도 같은 황족인 유장(劉璋)을 칠 수 없다며 많이 주저했다. 그러나 천하경영을 위해선 익주 땅이 꼭 필요해 결국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유장을 쫓아내게 된다. 유비가 결단을 못 내리고 주저하는 통에 방통(龐統)을 비롯해 군사도 많이 잃고 시일도 2년이나 걸렸다. 유비는 냉철하게 이해관계만 따진 것이 아니고 인의(仁義)나 인정 등을 중시했다. 이런 점이 유비의 약점이기도 하고 매력이기도 했다.




 
옛날 사마휘가 복룡(伏龍)과 봉추(鳳雛) 중 한 사람만 얻어도 천하를 넘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그 봉추 방통이 스스로 유비를 찾아왔다. 방통은 공명과는 달리 키도 작고 외모가 볼품이 없었다 한다.  그때 공명은 지방순시 중이었다. 유비는 방통을 한 번 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아  "이제 자리가 다 차서 시골밖에는 자리가 없으니 우선 거기 가 있으면 다시 부르겠다" 며 뇌양현 현령 자리를 준다. 방통은 어쩔 수 없이 부임을 하고는 일은 안 하고 술만 마신다. 이 소식을 접한 유비는 크게 노해 장비를 감찰차 내려보낸다. 장비의 급한 성질을 잘 아는 유비는 신중한 미축을 같이 보낸다. 장비가 가보니 방통이 소문대로 술만 마시고 있어 당장 잡아다가 요절을 내려는 것을 미축이 우선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말린다.  장비 앞에 불려나온 방통은 여전히 술에 취해 있었다. 장비가 근무태만을 호통치자 방통은 그동안 밀린 고을 일을 가져와 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을 처리하는데 100여 일 밀린 일을 반나절도 안 걸려 깨끗이 끝낸다. 장비는 매우 놀라 대인(大人)을 몰라봤다고 사과하곤 방통을 정중히 모시고 유비에게 간다. 이야기를 들은 유비도 방통에게 사과한다. 그때야 방통도 공명과 노숙의 추천장을 꺼내놓는다. 거기엔 방통은 큰 인물로서 큰 자리를 주어야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유비는 방통에게 군사중랑장(軍師中郞將)이란 요직을 주고 측근으로 삼는다. 유비는 실수도 하지만 그걸 알았을 땐 빨리 고치는 것이 큰 장점이다. 유비는 통이 커서 개성 있는 사람을 잘 썼다. 공명과 법정(法正)은 능력과 성격이 전혀 달랐지만 유비 밑에서 서로 협조하며 충성을 다했다. 위연(魏延)은 싸움 잘하는 장수였으나 고집이 세 공명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유비는 위연을 잘 써서 공을 많이 세우게 하고, 한중(漢中)을 점령했을 땐 장비를 제치고 한중태수란 중책을 맡겼다. 유비가 익주를 얻었을 때 황권(黃權) 같은 토착명사들이 반대를 많이 했는데 유비는 그들을 잘 설득해 심복하게 했다. 신기하게도 유비 앞에 오면 사람들이 적대감을 풀고 마음을 열었다. 또 신뢰하고 좋아했다. 단순한 무장뿐 아니라 까다로운 지식인이나 명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비라는 큰 그릇에서 나오는 천부적 인덕(仁德)은 부드럽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출처 :최우석/ 前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포브스)  

포브스 정기구독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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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하다가 새벽이 되버렸군요.
내일은 쉬는 날이니, 부담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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