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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삼국지 경영학 (25) - 손권

수성(守成)의 명CEO 손권

신축 외교로 위·촉사이 실리..

인재관리·육성 3대 수성 성공

삼국지의 세 주인공 조조·유비·손권 중 오나라 손권만 창업주 오너가 아니다. 2세지만 3대째다. 오나라는 손권의 아버지인 손견(孫堅)이 창업을 하고 2대인 손책이 기반을 넓힌 다음 3대째인 손권 대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나라의 틀을 갖췄다.  2세지만 물려받은 가업을 잘 발전시켜 위나라·촉나라와 더불어 천하를 삼분한 것이다.
가히 수성의 명인(名人)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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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南京) 명효릉(明孝陵) 인근에 있는 손권상.


  기업은 3대를 넘기가 어렵고 나라도 3대째가 가장 고비라는 말이 있다. 3대쯤 되면 초창기의 힘찬 에너지가 소진돼 기득권층이 발호하고 조직 내에 피로가 발생한다. 한번 대대적인 개혁을 해 조직이나 사람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참신한 기풍을 일으키고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무사안일과 경직화에서 빠져나와 재도약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1대는 창업자이기 때문에 에너지가 넘치고 2대째는 고군분투하는 창업주 1대를 보았기 때문에 긴장을 풀지 않지만, 3대쯤 가면 좋고 쉬운 것만 찾기 쉽다. 측근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기업이나 나라
가 융성하려면 뛰어난 3세가 나와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창업도 힘들지만 수성도 그에 못지않게 어렵다. 손권은 영특한 3세로서 수성에 성공한 명CEO라 할 수 있다. 통이 크고 신중한 성격으로 물려받은 인적자원을 잘 관리했을 뿐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많이 초빙하고 키웠다. 또 강동(江東) 명문들을 잘 포용해 그들의 적
극적인 협조를 받았다.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성격에다 생각이 유연했다. 때문에 손해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실리를 위해서라면 체면에 별 구애를 받지 않고 신축자재하게 행동한 것이다. 특히 외교 감각이 탁월해 당시 물고 물리는 삼국 관계에서 항상 최선의 선택을 했다. 어찌 보면 손권은 오나라의 3대째 CEO로서는 가장 이상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나라의 창업주이며 손권의 아버지인 손견은 양자강 하류인 오군(吳郡) 지방의 하급관리 집안에서 태어나 순전히 무용(武勇) 하나로 기반을 닦았다. 처음엔 역대 명문이었던 원술(袁術)의 부장으로 들어가 여러 전쟁을 누비며 명성을 얻었다. 매우 용감해서 여러 제후들이 반동탁군(反董卓軍)을 일으켰을 땐 선봉에 서서 싸우고 낙양성에도 맨 처음 입성했다. 그러나 확고한 기반을 닦기도 전에 전장에서 형주목 유표(劉表)의 부하 황조(黃祖)에게 기습을 당해 죽었다. 37세 때였다. 부하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큰아들 손책은 원술 밑에 몸을 의탁했다. 손책은 영특한 데다 무용이 뛰어났다. 원술은 일찍부터 손책을 좋아해  "손책 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한이 없겠다" 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욕심이 많고 그릇이 작은 원술 밑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던 손책은 18세 때에 뛰쳐나와 아버지의 기반인 오나라로 가서 자립한다. 손책이 오나라에서 깃발을 세우자 아버지 손견의 부하들이 달려와 돕는다. 황개(黃蓋), 정보(程普), 한당(韓當) 등이다. 


  손책이 오나라로 들어가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지방 토호 세력들
과 많이 싸워야 했다. 손책은 무력으로 이들을 차례로 정복한다. 책도 타고난 영걸이어서 많은 인재들이 모여든다. 대표적인 인물이 양주(揚州) 명문의 대표 주유(周瑜)와 북쪽에서 온 명사 장소(張昭)인데, 이 두 사람은 오나라의 2대 창업 공신이다.  당시 장강(長江) 남쪽의 오나라는 아직 미개 지역으로 토호들이 세력을 부리고 있었다. 4대 토호인 주(朱), 고(顧), 육(陸), 장(張)씨들은 갑자기 떠오른 손책 집안을 약간 우습게 보았다. 손책은 무력으로 그들을 누르면서 주유의 도움으로 겨우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손책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적극적인 공세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중원으로 직접 진출해 천하쟁패에 나설 생각까지 했다. 조조와 원소가 중원을 두고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일 때 비어 있는 허창(許昌)을 기습해 천자를 차지할 생각을 한 것이다. 이때 유표에 얹혀 있던 유비도 허창을 기습하자는 계책을 내놓았으니 천하의 영웅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나보다.



 
손책이 허창으로 쳐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중에 자객의 습격을 받아 부상을 입고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만다. 26세의 젊은 나이였다. 이제 겨우 기반을 잡아 맹렬한 기세로 사세를 확장하려는 판에 오너 겸 CEO가 서거했으니 오나라로선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때 손권이 등장한다. 19세의 어린 나이로 갑자기 CEO가 된 것이다.  손권은 그동안 형 손책을 따라 종군하기도 하고 여러 회의에도 참석했으나, 오너 CEO 자리에 그렇게 빨리 오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손책은 임종에 즈음해서 손권을 불러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에 나가 천하를 다투는 데는 네가 나보다 못할지 모르나 좋은 인재를 모아 잘 쓰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내가 너를 따라갈 수 없다. 앞으로 대외적인 일은 주유에게, 대내적인 일은 장소에게 물어 처리하라" 면서 신하들에게 동생 손권을 부탁하고 눈을 감는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손권은 밤낮없이 울기만 했다. 새 CEO가 정신을 못 차리니 나라가 크게 흔들렸다. 이때 장소가 손권을 타이른다.  "언제까지 울기만 하실 겁니까. 나라의 주인이 됐으니 할 일을 챙겨야 합니다" 하고 억지로 갑옷을 입게 하고 군대 사열에 나서게 한다. 본래 영민한 손권이라 의젓하게 사열을 받고 할 일을 조리 있게 챙기니 그때서야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다.



 
장소는 손권이 CEO의 역할을 잘하도록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했다. 엄격한 학자인 그는 연회 석상에서도 도가 지나치면 나무랐다. 손권은 어떤 땐 화를 내다가도 옳은 말이라 끝까지 듣고 참았다. 손권은 신중한 성격이지만 기질은 호방했다. 놀 땐 화끈하게 놀고 사냥도 좋아했다. 그러나 잘못을 알면 즉시 고칠 줄 알았다.



 
손권은 나중 천자가 될 사람이라 일찍부터 그 싹이 보였다. 어머니가 손책을 잉태했을 땐 달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손권 때는 커다란 해가 들어왔다고 한다. 손권은 눈이 푸르고 보라색 수염에다 각 진 턱을 가졌다 하는데, 그 특징으로 보아 북방계인 조조나 유비와는 다른 남방계가 아니었나 짐작된다. 손권 집에 찾아온 어느 유명한 역술가가  "이집 남자들은 모두 귀한 상이지만 수명이 길지 못하겠다" 고 했으나 손권을 보고는  "이 분만은 지극히 귀하게 되고 천수를 누리겠다" 고 말했다 한다.




 
손권은 삼국지의 세 영걸 중 가장 나이가 어린데 조조보다 27세, 유비보다 21세가 적다. 아들뻘이지만 노련한 조조, 유비 두 사람을 상대로 한치 양보 없는 명승부를 펼쳤다. 손권은 19세에 집권해 71세에 서거하기까지 50년 넘게 CEO 노릇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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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 도읍지였던 남경(엣 건업)의 오의항 거리.




  손권은 젊은 나이로 엉겁결에 CEO 자리에 앉았지만 CEO가 어떻
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타고난 자질을 보였다. 손권은 열 네 다섯 살 때부터 형 손책을 따라다니며 군대 생활을 했다. 그때 손권은 용돈을 많이 쓰겠다고 경리 참모 여범(呂範)을 졸랐다. 여범은 그럴 때마다 손책에게 보고하고 한 푼도 더 주지 않아 손권은 원망을 많이 했다. 손권이 더 높은 직책에 올라갔을 때 공금을 사사로이 많이 썼다. 손책이 가끔 순시를 와서 장부를 검사해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경리 참모 주곡(周谷)이 계산을 맞춰 놓아 야단을 피할 수 있었다.



 
손권은 그 당시엔 주곡에게 감사했다. 그러나 손권이 오나라의 CEO가 됐을 때 여범을 강직하고 충성스럽다고 중용하고 주곡은 장부를 속일 수 있다고 하여 쓰지 않았다. 그러기가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손권은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해 일을 처리한 것이다.  손권이 CEO가 되자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손책의 급서에 따른 국내의 동요를 진정시키면서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신중한 손권의 인품이 그 일에 알맞았다. 당시 오나라에서 손권 집안의 권위는 확고하지 못했다. 손씨와 오나라 토호들 간의 연립정부 형태로 나라의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창업주 겸 CEO인 조조나 유비와는 입장이 달랐다.



 
손권은 명문 출신에다 무력을 쥐고 있는 주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주유는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집안 출신이고 인물도 뛰어나서 강동 사람들의 신망이 높았다. 손책과 친한 친구면서 동서 간이기도 했다. 뛰어난 무장으로서 거느린 군사도 많았다. 손책이 죽고 나서 주유가 독립하지 않고 손권을 받든 것은 큰 행운이었다. 주유를 수하에 안을 정도로 손권의 그릇이 컸다고도 볼 수 있다.  손권은 주유를 매우 정중하게 대하고 주유는 좋은 인물을 많이 추천한다. 주유의 추천이 있었기에 강동의 많은 인재들이 젊은 손권 밑에 모여들었을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노숙(魯肅)이다. 노숙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주유는  "이제는 신하가 주인을 정하는 세상이다. 손권이 비록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으나 그릇이 크고 영민해 함께 대사를 도모할 만하다" 고 적극 권해 노숙을 끌어들였다. 노숙은 탁월한 외교관이자 행정가로 손권의 기반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 현실적인 전략가로서 손권에게 국가 전략과 외교 방향을 적절하게 조언한다.



 
손권을 처음 만났을 때  "이제 한실 부흥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북쪽은 이미 조조가 확고한 기반을 잡았으니 쉽게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주군은 강동 지방을 기반으로 우선 집안의 원수인 황조를 토벌하고 유표의 형주를 빼앗아 장강 일대를 장악해야 합니다. 그 다음 익주(益州)를 차지한 후 제위(帝位)에 올라 천하를 도모해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나중에 오나라 장군 주유나 감녕(甘寧)도 같은 제의를 한다. 제갈공명이 융중(隆中) 초당에서 유비에게 말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와 같은 맥락인데, 지혜 있는 사람들이 천하정세를 보는 눈은 비슷한가 보다.



 
적벽대전 때 노숙은 항복파가 대세를 이루는 중에 항전론(抗戰論)을 주장해 오나라를 지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노숙은 촉나라 유비나 공명과도 신뢰가 두터워 촉, 오 동맹을 유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노숙이 등장해 손권이 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도운 것이다.  주유가 노숙을 천거하기는 했으나 두 사람의 성향과 전략은 조금씩 달랐다. 주유는 적극적이고 책략에도 능한 대신 노숙은 신중하고 정통적이었다. 그래서 유비에 대해서도 주유는 강적이 되기 전에 일찍 싹을 자르자는 입장이었으나 노숙은 강적 조조를 견제하기 위해 유비를 이용하자는 입장이었다. 손권은 이 두 사람을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활용한다. 어떤 땐 주유의 건의를, 어떤 땐 노숙의 건의를 들어 CEO로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 손권은 원칙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의 폭도 컸다.



  주유와 노숙은 생각이 약간 달랐으나 서로 신뢰하고 존중했다. 주유가 죽을 때 후임으로 노숙을 추천했고 손권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손권이 노숙 다음으로 중용한 인물이 제갈근(諸葛瑾)이다. 제갈근은 공명의 형으로 성실한 성품에 심지가 굳었다. 공명과 형제 간 우애는 아주 좋아 서신 왕래도 자주 하고, 공명이 결혼해 오랫동안 아이가 없을 때 둘째 아들을 양자로 보내기도 했다. 유비의 신뢰도 두터워 오나라와 촉나라 사이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제갈근이 나서서 해결하곤 했다. 동생이 촉나라의 막강한 승상이어서 더러는 시샘을 받기도 하고 입장이 곤란할 때가 있었지만, 원만한 인품과 타고난 성실성으로 평생 손권에게 중용됐다.




 
유비가 관우의 복수전을 위해 오나라로 쳐들어갈 때 손권은 제갈근을 유비에게 사절로 보낸다. 그땐 유비가 서전에서 승리해 오나라가 매우 위험할 때였다. 제갈근이 사절로 가게 되자 동생이 있는 촉나라에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이때 손권은  "제갈근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내가 제갈근을 배반 못하듯 제갈근도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 이라고 잘라 말해 여러 말들을 잠재워 버렸다. 젊은 손권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그런 결정적 순간에 리더십을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중상모략을 당해 어려움에 닥쳤을 때 CEO가 사리판단을 잘못해 같이 의심을 한다든지 불투명한 태도를 보이면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한번 마음이 떠나면 종전 같은 충성이나 정신적인 유대는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해서 CEO는 인망과 권위를 잃게 되는 것이다.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변함없는 신임을 보여 줘야 마음과 충성심을 잡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손권은 매우 출중했다.




 
손권은 인물 욕심이 많았다. 제갈공명이 유비의 사절로 오나라에 왔을 때 손권이 탐을 많이 냈다. 그래서 제갈근에게 공명을 붙잡아 같이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제갈근은 어려운 일인 것은 알았으나 손권의 지시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공명은 오히려 제갈근에게 유비가 더 인자하고 큰 인물이니 같이 촉나라에 가자고 권하는 것이 아닌가. 제갈근은 손권에게 와서  "동생이 오나라에 남지 않는 것은 제가 유비에게 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고 복명했다.  이 말을 듣고 손권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일이 있을 때마다 제갈근을 감싸주었다.


 
공명과 가까운 노숙이 왜 손권을 섬길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공명"오나라 군주는 큰 그릇으로서 저를 중용하기는 할 것이나 제가 마음껏 일하게 해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라고 답했다 한다.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유비와 비교한 것이다.


 
손권은 노숙과 제갈근뿐만 아니라 여몽(呂蒙), 육손(陸遜) 등 장차 오나라를 이끌고 나갈 기둥들을 발탁해 키웠다. 좋은 사람을 정성을 다해 모셔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재력 있는 사람을 골라 잘 키우는 것도 CEO의 중요한 몫이다. 그런 점에서 손권은 위대한 경영자라 할 수 있다.


츨처 : 최우석 前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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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입니다.
늘 그렇지만 주말이 제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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