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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삼국지 경영학 (10) - 조조


뛰어난 인재 조련사 조조 


숨은 ‘큰 인물’ 귀신같이 발탁

야생마 길들여 ‘준마’로 활용 


  삼국지를 보면 하늘의 별처럼 인물들이 많다. 그때 왜 갑자기 쏟아지듯 인물들이 나타났을까. 격변기이기 때문이다. 구질서가 무너지고 신질서가 태동될 땐 틀에 박힌 인물들로선 미흡하다. 에너지가 넘치고 창조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때를 만나는 것이다. 조조 자신도 발상이 자유롭고 행동이 호방하기 때문에 태평성대였다면 큰 사고를 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조조는 특이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알아보고 수족같이 부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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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조는 촉나라를 세운 유비나 오나라의 손권까지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 했다. 유비를 포섭하기 위해 지극한 정성을 들였지만 유비는 남의 밑에 들어갈 그릇이 아니었다. 그래서 끝까지 조조와 겨뤘다. 손권은 적벽대전 때는 항거하지만 나중엔 조조의 신하를 자칭한다.  조조 진영엔 정말 별별 사람이 다 모였다. 싸움 잘하는 무장, 꾀를 잘 내는 모사, 병참 보급에 뛰어난 경제관료, 글 솜씨 좋은 문사, 유능한 사법관리, 명령만 내리면 돌진하는 행동파에서 대외용으로 모양 좋은 명사 그룹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나라 경영에 필요한 온갖 유형의 인물들이 즐비했다. 전성기 땐 약 100만 명의 병사와 1,000명의 유능한 장수가 있었다 한다. 조조는 이들의 특성을 잘 알아 필요할 때 귀신같이 골라 썼다. 뿐만 아니라 조조는 인물을 만들어 갔다. 사람의 잠재력을 재빨리 간파하여 적정한 경력 관리를 통해 인재를 육성한 것이다.




  경영자에게 있어서 인재 육성이란 가장 큰 일이다. 끝없는 긴장과 경쟁의식에다 부단한 담금질을 통해서 인재를 만들어 간다. 그 인재를 쓰는 CEO도 같이 긴장하고 스스로 업그레이드해가야 한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나는 내 일생의 80%는 인재를 모으고 교육시키는 데 시간을 보냈다. 내가 키운 인재들이 성장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좋은 업적을 쌓는 것을 볼 때 고맙고, 반갑고, 아름다워 보인다. 삼성은 인재의 보고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나에게 이 이상 즐거운 것은 없다”고 술회한 바 있다. 
성공한 창업 1세대들은 사람을 많이 키웠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이병철 회장이 특히 조직적으로 인재를 키웠다. 경력 관리도 체계적으로 하고 다소 벅찬 일을 맡겨 항상 도전적으로 일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내게끔 뒷받침했다. 우선 회장이 믿고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은 물론 주위에서도 알게 했다. 회장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히 힘이 붙게 되어 사업 추진이 쉬워진다. 사업이 성공하면 더 힘이 붙게 되어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는 스타 경영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 전통은 대(代)를 이어 계승되고 있다.  



스타 경영인도 방심하거나 나태하면 하루아침에 추락한다. 그땐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이런 추락과정을 통해 경영자의 그릇이 시험된다. 자포자기하거나 평상심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려울 때 의연하게 대처해 역경을 딛고 일어서야 큰 경영자가 된다. 한 번 물을 먹어 봐야 사람 보는 눈도 생기고 세상 인심도 알게 되는 것이다. 잘 나갈 땐 모두가 잘해 주지만 물을 먹으면 사람들이 다 같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걸 몸으로 깨닫게 되면서 경영자로 크는 것이다.  삼성이 유능한 경영자를 많이 배출하고 오늘날 압도적으로 잘나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실 성공한 왕조나 기업을 보면 모두 큰 인물들이 모여든다. 조조의 천부적 능력 가운데 하나는 특이한 인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키우는 것이다. 일찍부터 조조를 따라다닌 가신들이 조조에게 심복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천하를 떠돌던 이재(異才)들이 조조를 만나 정착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런 인물들이 큰 일을 한다.  이들은 큰 재주를 지닌 대신 다루기가 어렵다. 이들을 잘 다루면 큰 득이 되지만 잘못 다루면 큰일난다. 개성이 독특하여 행동이 파격적이기 때문에 기존 질서와 조직이 흔들린다. 그러나 모범생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엄두도 못 내는 일을 태연히 해치운다. 주인도 섬길 만한 주인이 돼야 섬기지 그냥 섬기려 하지 않는다. 당장의 이익보다 장래성을 보며 자신의 재주를 펼 수 있는가를 따진다.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땐 미련 없이 떠난다. 조조가 이들을 붙잡아 자기 사람으로 만든 것을 보면 꼭 야생마를 붙잡아 명마로 만드는 것이 연상된다.  



  현대 기업에서도 비슷하다. 기업의 일상적인 일은 우등생들이 하지만 새롭고 파격적인 일은 이재들이 한다. 기업이 한 번 크게 도약하려면 이런 이재들이 필요하다. 이들은 대개 정통파가 아니거나 비주류이기 쉽다.
일본의 소니가 2차대전 후 벤처기업에서 세계적 기업으로 일어선 것은 천재 기술자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와 탁월한 경영자인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의 합작품이지만, 그 에너지가 계속 충전된 것은 성악가 출신 CEO 오가 노리오(大賀典雄)와 이색 경영자 구타라기 겐(久多良木健) 덕분이었다.  오가는 소니를 가전에서 음반 등 소프트산업으로 영역을 넓히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구타라기는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만들어 오늘날의 소니를 먹여 살리고 있다. 구타라기가 처음 게임기를 만들자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 조직 안에서 마찰도 많았다. 구타라기가 하도 집념을 갖고 덤비니 오가 사장이 아예 자회사로 내보내 그걸 해보게 했다. 세계적 대히트 상품인 플레이스테이션은 그런 곡절 끝에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을 만든 잭 웰치 회장도 기존 조직과 마찰이 많았던 비주류였다. 도요타(豊田) 자동차가 요즘 잘나가는 것도 비주류 출신인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회장의 파격 경영에 힘입은 바 크다. 이런 창조적 파괴는 이재들이 하는 것이며 그것이 가능한 조직 풍토가 중요한 것이다. 이는 위대한 경영자만이 만들 수 있다. 



  조조 진영의 이재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출중하고 오랫동안 결정적으로 위나라를 보위한 사람은 가후(賈)와 사마의(司馬懿)라 할 수 있다. 위나라의 장래를 위해 조조가 미리 포석해 놓은 기둥과 같다. 이들은 늘 표면에 나서지는 않으나 긴요한 대목에서는 꼭 등장하여 핵심적 역할을 한다. 가후는 삼국지에서 정상급 모사이며 경력이 다채롭다. 순욱(荀彧) ·곽가(郭嘉)와 더불어 조조의 측근 참모로서 활약한다. 조조를 만나기 전엔 주인을 골라 전전했다. 조조 진영에도 늦게 참여하지만 출중한 실력과 현명한 처신으로 끝까지 살아남아 위나라 최고 원로로서 활약한다.  큰 공을 세운 순욱은 조조와 뜻이 안 맞아 50세의 나이에 자살하고 곽가는 조조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으나 38세로 병사한다. 그러나 가후는 조조의 아들 대까지 간다. 당시 천하대란의 와중에서 최고 권력자의 측근으로 76세까지 살았다는 것은 기적에 속한다. 그야말로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신기(神技)요, 처세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조조와는 원수 사이였지만 관도대전(官渡大戰) 직전 주인인 장수(張繡)를 설득하여 깨끗이 그 밑으로 들어갔다. 조조에겐 가후 때문에 큰아들과 조카를 잃은 악연이 있었다. 그러나 가후의 큰 재주와 명성을 아껴 기꺼이 맞아들인다. 조조의 위대함이다.  가후는 대세를 보는 눈이 정확하고 판단이 빨랐다. 특히 임기응변에 능하고 대국을 잘 다뤘다. 관도대전 때 가후는 조조에게 지구전은 불리하니 기습책을 쓰라고 적극 권한다. 과연 조조는 기습공격으로 돌파구를 열어 강적 원소를 격파했다. 관도대전 이후 조조는 가후의 벼슬을 높이고 측근에 두어 중용한다. 그 후 마초(馬超)와 한수(韓遂)가 서량(西凉)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큰 공을 세운다.  처음엔 이들의 세력이 강성하여 조조도 고전했는데 가후의 헌책으로 두 사람을 이간시켜 각개 격파한다. 마초는 뛰어난 무장이었고 병사들도 용감하여 힘으로 이기기 어렵자 가후가 꾀로써 이들을 정벌한 것이다. 이때 가후가 쓴 계책은 기기묘묘하다. 마초와 한수가 서로 의심하도록 조조에게 일부러 연극도 시키고 이상한 편지도 보낸다. 모두 가후의 연출이다. 그것이 결국 성공하여 반란을 진압한다.  


  마초와의 싸움 때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어느 전투에서 조조가 기습을 당해 매우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 이때 조조 진영에서 소와 말을 대량으로 풀어 버린다. 가축이 귀할 때여서 마초군은 전투를 하다 말고 소와 말을 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 틈을 타 조조는 간신히 도망칠 수가 있었다. 가축을 풀어 조조를 구한 사람은 정비(丁斐)라는 병참 책임자였다. 조조와 동향 사람으로 유능하지만 부패했다.  부정을 저질러 옥에 갇히기도 했으나 조조는 그때마다 너그럽게 봐준다. 난세에 필요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조조는 "그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그를 데리고 있는 것은 마치 쥐를 잡으려고 도둑개를 데리고 있는 것과 같다. 도둑개는 작은 물건을 훔쳐가기는 하지만 내 보따리를 쥐가 갉아먹지 못하게 지켜주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과연 머리가 비상한 정비는 가장 위급할 때에 소와 말을 풀어 조조의 생명도 구하고 싸움을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조조의 선견지명이다.  


  가후는 기책(奇策)뿐만 아니라 큰 정치에도 통달했다. 조조가 남쪽 정벌에 다시 나서 형주(荊州)를 점거하고 강동의 손권을 치려 할 때 이를 말린다. 선정을 베풀어 선비를 다독이고 백성들을 잘 살게 해주면 손권은 스스로 와서 항복하리라는 것이다. 서둘러 무력으로 정벌할 것까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조는 강동 정벌을 강행하다 적벽대전으로 참패한다. 조조는 그때 후회를 많이 했다 한다.  



  가후의 정세 판단은 조조의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빛이 난다. 가후는 일찍부터 조조의 큰 아들 조비(曹丕) 편이 되어 승계를 받도록 여러 가지로 조언한다. 조조가 어느 날 가후를 불러 누구를 후계자로 했으면 좋겠느냐고 은밀히 묻는다. 가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현명한 가후는 후계 문제 같은 민감한 사안에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조조가 거듭 재촉하자 문득 깨어난 듯 원소와 유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둘 다 장자 승계를 안 해 나라가 시끄러워진 케이스다. 조조는 재빨리 알아차리고 장자를 택하기로 결심한다. 조조로 말하면 가후 같은 사람이 장남 편이 되니 안심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대권을 잡은 조비가 가후를 더욱 극진히 모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조조의 포석대로 된 것이다.  


  사마의는 가후보다도 더 큰 공로와 영향을 미쳤다. 가후는 이미 명성이 높은 사람이었지만 사마의는 무명의 인물이었다. 고관 집 자제로 뒤늦게 지방의 회계책임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젊지만 매우 유능하다는 소문을 듣고 조조는 자기 밑으로 오라고 권한다. 조조가 막강한 실력자였지만 환관 집 자손이라는 출신 때문에 약간 우습게 보았던 사마의는 중풍이 걸렸다고 핑계를 대고 그 제의를 거절한다.  조조는 그것이 꾀병임을 알아내고 만약 사마의가 자기편이 되면 큰 힘이 되지만 남의 편이 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여 자객을 보낸다. 자객이 사마의 암살에 실패하자 조조는 다시 군사를 보내 사마의를 모셔오지 못하면 아예 잡아 오라고 한다. 사마의는 또 거절했다가는 목숨이 위태롭다고 판단하고 할 수 없이 조조 진영으로 간다.  처음엔 억지로 갔으나 막상 가보니 조조의 인물됨에 반해 깊이 심복하고 충성을 다한다. 또 많이 배운다. 조조도 사마의를 측근에 두고 중용한다. 또 큰 아들 조비의 교육 담당을 겸하게 하여 장래에 대비한다. 그러나 사마의가 남의 밑에 있기엔 그릇이 너무 크다는 것을 간파하고 경계의 눈초리를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조조는 꿈에서 말 세 마리가 한 개의 여물통에 머리를 박고 열심히 먹는 모습을 본다. 사마의와 그의 두 아들을 말 세 마리로 본 것이다. 조조는 더욱 의심이 나 아들 조비에게 사마의가 유용한 인물이지만 잘못하면 우리 집안을 위협할 줄 모르니 항상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그런 낌새를 눈치채고 사마의도 무척 조심한다. 사마의가 워낙 유능하고 큰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조조도 어쩔 수 없이 많이 의존한다.  


  소설 삼국지에서 사마의는 늘 제갈공명에게 당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막상막하였다. 뛰어난 군인이고 전략가이며 정치가로서 최후의 승리자라 할 수 있다. 만약 사마의가 없었다면 제갈공명의 날카로운 공격에 위나라가 무너졌을지 모른다. 천하의 기재(奇才) 공명의 계속된 공세를 사마의의 끈기와 정확한 계산이 막아낸 것이다. 천하 정세와 전쟁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여 어떨 땐 지구전으로, 어떨 땐 전격전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정치적인 안목도 높았다. 촉나라의 형주 지구 사령관 관우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서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을 때였다. 위나라에서 구원군을 보냈으나 대패했다. 관우는 도읍지 허창(許昌)까지 쳐들어올 기세였다.  조조도 당황하여 도읍지를 옮길 논의까지 했다. 이때 사마의가 등장하여 대담하고 침착한 전략으로 위기를 수습한다. 사마의는 군사작전만으로 관우를 막을 수 없으니 오나라 손권을 끌어들이자고 제안한다. 그때까지 위나라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촉(蜀) ·오(吳) 두 나라와 연합
하여 대항해 왔는데 오나라를 우군으로 끌어들여 촉나라를 치게 한다는 것이다. 마침 그때 촉 ·오 동맹에 약간의 균열이 있었고, 손권이 관우의 형주 땅을 탐내고 있는 것을 사마의는 간파했던 것이다. 이 전략은 멋지게 성공하여 오나라는 형주성을 기습 점령했고 근거지를 잃은 관우군은 참패하고 말았다. 위나라의 위기도 저절로 없어졌다. 사마의는 파격적인 발상으로 위나라를 구한 것이다.  



  사마의는 속이 깊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려워했다. 그러나 조조에겐 꼼짝을 못했다. 몇 수 위라고 인정하고 항상 두려워하며 배우는 자세였다. 조조에겐 사마의를 압도할 기백과 내공이 있어 감히 딴마음을 먹지 못했다. 조조는 죽으면서 사마의에게 자식과 나라를 부탁했고 그것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러나 4대째에 이르러 조조의 자식이 시원치 않자 조씨의 나라를 뺏는다. 조조는 사마의를 부릴 수가 있었지만 그 자손들은 안 되었던 것이다.  


출처 : 포브스 심층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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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녁즈음에 워드에 옮겨놨던 글을 포스팅할려고 했는데, 왠걸!! 트래픽 초과 때문에 지금 올리게 되었어요.  트래픽 용량을 추가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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