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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삼국지 경영학 (17) - 유비

변신의 명수 유비


야망 숨기고 때론 바보 행세

배포 크게 큰 실리는 꼭 챙겨



 유비는 몇 번이나 죽거나 패가망신할 고비를 넘지만 그때마다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살아남는다. 거의 기적이라 할 만하다. 운도 좋았지만 유비의 냉철한 처신술이 큰 역할을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약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경계색을 쓰기도 하고 보호색을 쓰기도 한다. 경계색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요란한 색깔을 내는 경우이고, 보호색은 주위 색깔과 같이해 몸을 감추는 경우다. 유비도 경계색과 보호색을 번갈아 교묘하게 잘 썼다. 상황을 빨리 판단하여 뻗댈 때는 뻗대지만 굽힐 때는 주저 없이 굽힌다. 다소 비굴해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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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비는 약했기 때문에 주로 보호색을 쓴다. 보호색을 쓰기 위해선 침착함과 담대함이 필요하다. 맹수가 아무리 건드려도 고슴도치가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맹수가 싫증이 나서 그냥 가면 재빨리 도망가는 것과 같다. 매우 드물지만 유비도 더러는 경계색도 쓴다. 승산이 있을 때까진 자신을 낮추고 있다가 때가 되면 용감하게 일어서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표변하는 유비의 운신은 하도 교묘하고 자연스러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유비는 연기도 일품이다. 여러 번 주인을 바꿨지만 유비는 가는 곳마다 환영받고 인의군자(仁義君子)로 대접받는다. 명성과 신의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전란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느 정도의 변신이 불가피했겠지만 유비처럼 자연스럽게 또 득을 보면서 한 경우는 드물다.  어제까지의 적에게도 태연하게 가고, 이제까지의 우호관계도 깡그리 무시한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유비의 뛰어난 연기와 더불어 그의 정확한 정세읽기 덕분이다. 당시는 물고 물리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가담할 때 세력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유비는 적의 적은 우군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그걸 적절히 활용했던 것이다. 유비는 상대방이 경계심을 갖지 않도록 하는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유비의 세력이 미미하기도 했지만 인간적으로도 미움을 사지 않았다. 라이벌이 아니라 자기 편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했다. 전혀 야심 있게 보이지 않았다. 어느 누구보다도 큰 야심과 집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렇게 보였으니 역시 천부적인 자질이다.



 
유비는 전문경영인이라기보다 오너형이다. 그릇이 크기 때문에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 그래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해하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영웅은 영웅을 안다고 뛰어난 CEO인 조조는 일찍이 유비의 그릇을 간파한다. 그래서 한 번은 유비를 청해 술을 마시면서 시험을 해본다. 이때 조조는 어떻게든 유비를 달래 자기 밑에 두고 싶어했고, 유비는 조조를 제거하려는 쿠데타 음모에 가담하고 있었다. 유비로선 목숨이 걸린 시험장이었다. 조조가 먼저 영웅론을 꺼내며 지금 천하의 영웅은 누구냐고 묻는다. 유비는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계속 의뭉을 떤다. 조조가 집요하게 묻자 할 수 없이 원소(袁紹), 원술(袁術), 손책(孫策)에서부터 유표(劉表), 유장(劉璋), 장로(張魯)까지 당시 이름 있는 사람들을 전부 들먹인다. 조조는 한마디로 모두 시원찮은 인물들이라고 폄하해버린다. 심지어 조조의 라이벌이며 당시 최강의 세력을 자랑하는 원소조차 "겉모양은 번듯하나 담대하지 못하고 일을 꾸미기는 하나 실행할 힘이 없고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작은 인물"이라고 말한다. 라이벌의 그릇됨과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영웅이란 가슴에 큰 뜻을 품고, 배에는 좋은 지모가 가득하며 하늘과 땅의 기운을 마음대로 부릴 줄 아는 사람이라며 그에 합당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유비뿐이라고 말한다. 유비는 감추고 감춘 속마음을 들킨 듯 매우 놀란다.


 혹시 쿠데타 음모가 탄로난 게 아닐까 하고 들고 있던 젓가락마저 떨어뜨린다. 마침 그때 천둥번개가 크게 쳤다. 유비는 상 밑에 몸을 숙이면서 벌벌 떤다. 매우 놀라는 표정을 하면서 자기는 어릴 때부터 천둥번개를 무서워 했다고 한다. 절묘한 타이밍과 완벽한 연기였다. 조조는 “사내 대장부가 천둥번개를 무서워하다니요”하면서 화제를 돌린다.  조조로선 유비에 대한 의심이 아주 가신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유비를 가볍게 보게 되었다. 그만큼 유비는 필요할 때 기막히게 연기를 할 줄 알았다.



 
삼국지를 보면 곤란할 때 유비가 통곡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러면 대개 곤경에서 벗어난다. 유비는 평소 인의군자로 소문이 났기 때문에 주위에서 의심하거나 하지 않았다.  유비는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면서 착실히 실리를 챙긴다. 조조와의 관계에서도 유비는 몇 번이나 조조를 배반한다. 마지막에 유비는 원술 토벌을 핑계로 군사까지 빌려 조조의 세력권을 벗어나 자립하게 된다. 나중에 조조는 그것을 원통하게 여겨 원소와의 결전을 앞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유비 정벌전에 나선다.  뜻밖에 기습을 받은 유비는 참패해 가족까지 버리고 원소에게 도망갔다. 원소와는 오랜 적대관계였으나 원소는 유비를 교외까지 나와 맞을 정도로 환영했다. 조조와의 결전을 앞둔 원소는 유비의 전략적 가치를 잘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유비는 천하의 결전장이 된 관도(官渡)의 싸움에서 원소 편이 돼 조조군과 싸웠다.  이때 유비의 아우 관우는 조조에게 항복해 조조 편이 되어 있었다. 관우가 원소의 선봉장 안량(顔良)과 문추(文醜)를 전장에서 죽이자 원소는 격노해 유비를 죽이려고 했다. 유비는 그때마다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때의 연기도 박진감이 있다. 원소는 번번이 속아 넘어갔다. 유비가 원소에게 가기는 했지만 심복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급한 김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가 기회만 되면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원소는 조조보다 더 그릇이 작은 사람이라 유비의 속뜻을 알 수 없었고, 부릴 수도 없었다.  한 번은 관우를 달래 원소 편으로 데려오겠다 하니 원소가 매우 좋아했다. 아무래도 유비가 원소보다 한 수 위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표를 원소 편으로 끌어들이겠다며 원소 밑을 떠난다. 이때도 원소는 매우 고마워한다. 기막힌 재주다. 떠나면서 유비는 “무릇 리더는 큰 뜻을 정해 함부로 동요하지 말아야 하는데 원소는 뜻을 정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한 번 정한 것도 죽 끓듯 바뀐다. 거기다 변덕이 널리 알려져 남에게 이용까지 당하니 앞날이 뻔하다”탄식한다. 유비는 원소의 그릇을 정확히 보고 일찌감치 자기 길을 찾은 것이다. 유비는 평소 매우 겸손하고 점잖게 행동하지만 속으론 각 인물에 대한 평가가 냉엄했다.



  유비는 평생 여러 사람의 신세를 져도 고마운 마음 때문에 자기가 가는 길을 바꾸지는 않았다. 여러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이득되는 거래를 했다. 그러면서도 인의군자로서 유비의 명성은 매우 높았으니 불가사의한 일이다.  맨 처음 공손찬의 신세를 크게 졌는데 공손찬이 원소에게 패해 일찍 망하는 바람에 유비와는 우호관계에서 끝난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과는 적대관계가 되거나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유비의 세력이 커짐에 따라 옛날 신세진 사람들과도 싸우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런 점에서 유비는 매우 냉철했다. 유비는 손권과의 관계에서도 상당한 득을 본다. 유비가 형주(荊州)에서 조조군에 참패해 오갈 데가 없었을 때 손권과의 첫 거래가 시작되는데 둘은 처남매제 사이가 되었다가 나중엔 원수가 돼 헤어진다. 유비 일행이 조조에게 참패하고 겨우 목숨만 건져 임시피난처에 있을 때 유비는 손권이 보낸 특사 노숙(魯肅)을 만난다. 손권은 조조가 형주를 무혈점령하자 국방에 위협을 느껴 죽은 유표를 조문한다는 구실로 노숙을 염탐차 형주로 보낸 것이다. 노숙이 유비에게 묻는다. "이제 어쩔 작정이십니까." 유비라고 뾰족한 방도가 있을 리 없었다. 유비로선 손권과의 연합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나 그 말을 스스로 꺼내기도 어려웠다. 유비 쪽에 가진 것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비는 전혀 초조한 기색도 약점도 보이지 않았다. 통이 그토록 큰 것인지 연기가 완벽한 것인지 노숙이 오히려 초조할 지경이었다. 유비는 천연덕스럽게 "창오(蒼梧)의 오거(吳巨)와는 좀 아는 사이이니 그리로 가서 의탁해볼까 하오." 창오라면 남쪽 변두리 지역이다. 그 말을 듣자 노숙이 펄쩍 뛴다.  "그리로 갈 게 아니라 우리 오나라와 힘을 합치면 어떻습니까. 오나라는 나라가 융성하고 물자가 풍부하며 특히 우리 주군이 영특하고 관대하니 필시 반길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갈공명을 오나라의 손권에게 파견해 달라고 한다. 유비는 처음 공명을 보내기 어렵다고 하다가 마지못해 응낙하는 체한다. 그래서 유비와 오나라 손권과의 첫 거래가 시작되는데 그 말이 오나라에서 먼저 나오도록 만든 유비의 전략과 연기도 대단하다 하겠다.



  다행히 사신으로 온 노숙은 손권의 신임을 받고 있는 데다 유비와 연합해서 조조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항전파(抗戰派)였다. 당시 오나라엔 대세에 따라 조조에 항복하자는 대세파(大勢派)도 많았다. 그래서 유비와 손권의 군사동맹이 이뤄지고 이 둘은 힘을 합쳐 적벽(赤壁)에서 조조군을 쳐부순다. 이때 싸움을 주도한 것은 오나라 손권군이고 유비는 조역 노릇만 했다. 그러나 전후 처리에 있어 유비가 가장 득을 보아 그토록 바라던 형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오나라가 유비를 달래는 정책을 썼기 때문에 손권은 누이동생을 유비의 후처로 주고 또 오나라가 차지하고 있었던 형주 요지를 유비에게 빌려주기도 한다.  형주를 빌릴 때 유비는 손권에게 직접 담판하는 전략을 쓴다. 유비가 손권의 매제(妹弟)가 된 다음해에 오나라 도읍지인 진강(鎭江)으로 손권을 찾아가  "나에게 딸린 식구가 불어나 지금 영토로는 모두 먹여 살릴 수가 없으니 형주 땅을 좀 빌려 달라"고 호소한다. 당시 오나라의 제2인자인 주유(周瑜)는 이참에 유비를 붙잡아 놓아 아예 후환을 없애 버리자고 손권에게 권한다. 그러나 노숙은 유비의 이용가치가 아직 있으니 형주를 잠시 빌려줘 조조와 싸우게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건의한다.  손권은 깊이 생각한 끝에 노숙의 건의를 채택한다. 이때 손권도 매제 유비의 특별한 부탁을 들어주긴 했지만 매우 불쾌해 했다 한다.  만약 이때 손권이 주유의 건의를 받아들였다면 그 뒤의 유비나 촉나라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유비가 오나라로 가는 것을 제갈공명 이하 여러 사람이 반대했으나 유비는 그 길밖에 없다면서 진강 행을 단행했다. 유비의 훌륭한 점은 정말 필요한 일은 직접 결정해 단행한다는 점이다. 바로 위대한 CEO가 할 일이다. 유비도 뒤에 오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알게 되자 "정말 사지(死地)에 들어갔다 왔구나"며 한숨을 쉬었다 한다.



  이 장면이 소설 삼국지에선 유비가 오나라에 장가 들러 가서 제갈공명의 귀신 같은 꾀와 조자룡의 활약에 의해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오는 것으로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다. 유비가 새 부인과 함께 형주로 도망쳐 나올 때 부인 앞에서 장기인 눈물을 흘리며 위기탈출을 간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도 중국 남경(南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진강(鎭江) 북원공원의 감로사(甘露寺)에 가보면 유비가 오나라 손권의 누이에게 장가 들러 왔을 때 등장하는 여러 장소가 그대로 있다.  감로사 높은 망루에서 보면 멀리 장강(長江)이 보이고 경치가 빼어난데 유비가 천하제일강산(天下第一江山)이라고 감탄했다 해서 천하강산제일루(天下江山第一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또 유비가  장가가는 모습을 천연색 그림과 조각으로 재현해 놓았다. 그림 중엔 유비가 손권의 모친인 오국태(吳國太)에게 사윗감으로서 첫선을 보이는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늙은 신랑 유비가 조자룡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하게 서 있는 장면이다. 만약 오국태의 마음에 안 들면 유비는 오나라 군사들에 의해 죽게 돼 있었다. 다행히 오국태가 흡족해 하여 유비는 무사했는데 그때 군사들을 매복시켜 놓았던 복도도 그대로 있다. 또 유비와 손권이 말솜씨를 겨뤘다는 조마장(調馬場), 각기 칼을 뽑아 소원을 말하면서 칼로 내리쳤다는 갈라진 바위도 있다. 이런 유물들은 그때 것이 아니라 후세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많은 사람이 이걸 보려 찾아들어 삼국지의 인기를 그대로 말해준다. 나중에 형주 반환을 둘러싸고 오나라와 끊임없는 분쟁이 벌어지는데 그때마다 유비는 시침을 뚝 떼고 형주 땅을 내놓지 않는다. 노숙이 중간에서 애를 많이 쓰는데 이때 주유가 노숙에게 "당신은 성실한 사람이지만 유비는 사납고 야심에 찬 호걸이고, 제갈량은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라 쉽지 않을 거요"라고 말한다. 천하의 영걸인 주유도 유비가 만만치 않음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나라는 결국 전쟁을 통해 형주를 찾아 갈 수밖에 없었다.




유비는 양순한 것 같아 보이지만 떼쓸 땐 떼를 쓰고, 시침 뗄 땐 시침을 떼면서 실속을 챙긴다. CEO의 입장에서 보면 유비는 대단한 전략가고, 얼굴 두꺼운 배짱파이며, 노련한 협상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비,  조조, 손권 세 사람 간의 거래에서 두 사람이 유비에게 많이 당했고 그래서 두 사람 다 유비를 못 믿고 버거워 했는지 모른다.


출처 : 최우석/ 前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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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작성한 것 같은데, 이전할 때 빠뜨렸나 봅니다 헐!
그래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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