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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삼국지 경영학 (7) - 조조


조조의 비정과 냉혹한 결단


대권에 거슬리면 누구든 제거
깊은 속 몰라 측근들도 초긴장

  조조가 감성적인 면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덤이지 본질은 아니다. 감성적 리더십만으론 일시적으로 인심을 얻거나 좁은 땅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천하를 차지하긴 어렵다. 부드러운 감성 밑엔 강철 같은 의지와 냉혹한 계산이 깔려 있어야 한다. 옛말에 필부의 만용과 아녀자의 인정으론 천하를 도모하기가 어렵단 말이 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용기가 필수적이지만 용기도 절제와 계획성이 필요하며 인정도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기업경영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크게 성공한 경영자를 보면 어떨 땐 인정이 넘치는 것 같고 어떨 땐 냉혹하기 그지없는 것 같아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런 복잡한 성격이 아니면 그 많은 사람을 겁내게 하면서 승복시키고 또 좋아하게 하며 따르게 할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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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원래 정치에 관한 명저이지만 요즘 경영학에서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 권력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에는 군주는 부하들로부터 두려움의 대상도 되고 사랑도 받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만약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두려움이 먼저라 했다. 은의(恩義)로 맺어진 관계는 배신당하기 쉬워도 보복의 두려움이 있으면 여간해선 배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도산한 많은 문제기업을 보면 기업이 기울어질 때 내부 배신이 많으며, 그런 기업일수록 경영자가 마음이 약하거나 약점이 많아 부하들을 달래주기만 하고 공적인 조직기강은 엄하게 못 다스린 경우가 많다. 배신이란 처음부터 작정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하는 수가 많은데, 그땐 예상되는 보복을 감수하기보다 차라리 은의에 눈감게 된다는 것이다. 


 조조의 일생을 보면 따뜻한 감성도 자주 보여 주지만 아울러 비정함과 냉혹한 결단으로 점철되어 있다. 동탁이 낙양에 들어와 권력을 잡았을 때의 일이다. 조조의 실력을 잘 아는 동탁은 같이 일하자면서 좋은 자리를 준다. 그러나 조조는 동탁 정권이 오래갈 수 없다고 보았다. 동탁이 욕심이 많은 데다 천하를 다스릴 만한 그릇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래서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도망을 친다. 동탁은 즉각 체포령을 내린다. 조조는 도중에 여백사(呂伯奢)라는 친지의 집에 들르는데 거기서 무슨 오해가 생겨 조조는 여백사의 가족을 몰살시킨다. 도중에 조조를 대접하려 장을 봐오던 여백사를 만나자 그도 죽이고 만다. 만약 살려 두면 집에 돌아가 가족이 몰살당한 것을 알고 사람들을 모아 추격해올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일설에는 여백사의 망나니 아들이 조조의 재물이 탐나 덤비므로 할 수 없이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도망가면서 일가를 몰살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때 조조는 “내가 천하를 배신할 수는 있어도 천하가 조조를 배신하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조조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그 길로 조조는 고향에 돌아가 일가의 전 재산을 팔아 동탁에게 대항할 의용군을 모은다. 이때 가족 중심으로 모인 약 3,000명의 군사가 뒤에 천하를 휘어잡는 조조 세력의 모체다. 당시 최강의 무장 세력이며 집권자이던 동탁에게 대항할 생각을 하고 그걸 행동에 옮겼다는 것만으로도 조조의 대담한 도전의식과 용기를 엿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무모하고 꿈같은 도전의식 없이는 결코 위대한 창업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조조는 자신의 원대한 포부에 도움이 되는 것은 끝없이 포용하는 대신 방해가 되는 것은 가차 없이 제거해 나갔다.  처음엔 자신의 터전을 잡고 그걸 키워나가는 것이었으나 차츰 욕심이 많아져 자신의 왕국 건설까지 생각했다. 천자를 모시고 한나라를 이어가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속으로는 한나라에 대신할 조씨 제국(曹氏 帝國)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때가 될때까진 자신의 속셈을 절대 내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조조를 잘못 보아 많은 선비와 명사들이 조조 밑으로 몰려들었다. 그것도 조조의 탁월한 능력이다. 


  조조는 필요하면 적은 말할 것도 없고 부하들도 태연히 속였다. 천하의 일을 하는데 사소한 것엔 구애받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었다. 보통사람들의 윤리의식과 가치체계로선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영웅이나 위대한 경영자가 큰일을 하는지 모른다. 조조의 기질과 행동이 변화무쌍하고 신출귀몰했기 때문에 부하들도 조조의 진심을 알 수 없어 모두 두려워했다. 조조가 원술(袁術)과 싸울 때였는데 중도에 양식이 떨어졌다. 보급책임자가 식량 부족을 보고하자 큰 되 대신 작은 되로 퍼서 주라고 지시한다.  그러면 병사들의 불평이 나올 거라고 말하자 조조는 “나에게 생각이 있으니 너는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지시한다. 며칠이 지나자 병사들의 불평이 터졌다.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조조는 보급책임자를 부른다. 병사들의 동정을 보고하자 “그래서 네 목을 좀 빌려야겠다”고 말한다. 자기는 지시대로 했다고 변명하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병사들을 달래려면 그 길밖에 없다. 너의 가족들은 내가 잘 보살피마” 라며 참수형에 처했다. 그리곤 그 목을 높이 매달고는 보급책임자가 되를 속여 식량을 착복했기 때문에 본보기로 처단했다고 써 붙인다. 병사들은 “그러면 그렇지. 승상께서 식량을 줄이라고 할 턱이 있나”하며 소란이 수습되었다 한다. 

 
  조조는 부하들에게 절대복종을 요구하고 그걸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어느 날 조조는 시녀에게 한 시간 뒤에 깨워 달라고 말을 하곤 잠이 든다. 그 시녀는 평소 조조가 매우 총애했는데 조조가 너무 달게 자는지라 깨우지를 못했다. 조조는 일어나자마자 지시한 대로 깨우지 않았다고 그 시녀를 처단한다. 이런 일은 일종의 군기 잡기라 할 수 있다. 조조는 주위의 반란이나 암살을 매우 경계했다. 한 번은 곁에서 부리는 시동을 보고 내일 칼을 품 속에 품고 자기에게 몰래 접근해 보라고 지시한다.  시동이 그러면 자기는 죽는다고 하자 이것은 어디까지나 연극이고, 입만 다물고 있으면 마지막 순간에 자기가 구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다음날 조조는 측근들을 모아놓고 자기는 암살의 기미가 있으면 몸에 신호가 온다고 했다. 그리면서 지금 신호가 온다며 그 시동을 가리켰다. 호위 병사들이 달려들어 몸을 수색하니 칼이 나왔다. 주위 측근들은 조조의 귀신같은 예감에 놀랐다. 형장으로 끌려간 그 시동은 마지막 순간에 구해 줄 것으로 믿었으나 조조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한 번은 조조가 자기는 잘 때 사람이 접근하면 칼로 찌르는 버릇이 있으니 조심하란 말을 한다. 그리고는 낮잠을 자면서 이불을 걷어찼다. 시동이 이불을 덮어주자 조조는 벌떡 일어나 칼로 베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한참 뒤에 깨어난 조조는 어찌 된 일이냐고 묻고는 내가 엉뚱한 사람을 죽였다고 슬퍼하는 것이었다. 잠잘 때의 암살을 막기 위한 연극이었다. 

   이렇게 사생활에서도 비정했지만 정치적으론 더 냉혹했다. 자신의 정치포석을 위해서는 명문집안도 창업동지도 가차 없이 처단했다. 공융(孔融)은 공자(孔子)의 후손으로서 당시 이름을 날리던 지식인이며 명망가였다. 성격이 강직해 조조 앞에서도 할 말은 다 했다. 조조의 여러 개혁 조치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했다. 처음엔 조조도 공융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공융의 명성을 적당히 이용한다. 벼슬도 높여 주고 자기편으로 쓰려 한다.  그러나 공융은 환관 집안 출신인 조조를 약간 우습게 보고 계속 불경스럽게 군다. 조조는 참으면서 때를 기다린다. 주위에서도 공융이 약간 심하다는 여론이 돌자 사람을 시켜 공융을 탄핵하게 한다. 그리고 공융의 혐의를 조사하게 하면서 다시 탄핵건의서를 연달아 올리게 한다. 조조는 공융이 안타깝지만 이렇게 비난이 많고 죄가 명백하니 어쩔 수 없다며 공융을 처단한다. 사람을 처단할 땐 한탄도 하고 눈물도 뚝뚝 흘리지만 일단 마음먹은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한다. 


  조조가 처음 매우 총애했던 양수(楊修)를 처형할 때도 주저함이 없었다. 양수는 천재적 두뇌를 가진 재사로서 머리 쓰는 것이 조조를 앞섰다. 조조의 속셈이 양수에 의해 몇 번 간파당하자 조조는 군심(軍心)을 흐트렸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한다. 그러나 사실은 조조가 후계자로 점찍고 있는 장남의 라이벌인 3남 측근이었기 때문에 미리 제거해 버렸다는 설도 있다. 그렇게 머리 좋은 모사(謀士)가 남아 있으면 자신이 죽은 후에 엉뚱한 분란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장차 조씨 왕국에 장애가 되는 것은 미리 없애 버리는 것이다. 


   조조는 평소 부하들을 엄격히 관리했다. 공식적인 감찰기구 외에 비밀조직을 두고 물 샐 틈 없는 감시를 했다. 그 책임자로 평판이 별로 안 좋은 사람을 임명했다. 과연 그는 권력을 빙자해 횡포를 부리고 말이 많았다. 옆에서 그 사람이 저질이니 경질해야 한다고 말하니 조조는 “당신은 하나는 알고 둘을 모른다. 남의 뒷조사나 하고 비행을 캐는 일을 마음씨 좋은 어진 군자가 할 것 같은가. 다 용도가 있어서 쓰고 있으니 가만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 과연 그 사람은 남의 비위를 캐고 불편한 사람 숙청하는 데 탁월한 공로를 세운다. 그러나 그 횡포가 심해지고 원성이 높아가자 비위를 문제 삼아 적당히 처단한다. 악인은 악인대로 쓰임새에 맞게 쓰고는 용도 폐기한 것이다. 


  조조는 통치권에 관련되는 죄에는 더욱 냉혹했다. 조조는 명목상이지만 황제를 모시고 있었다. 조조는 한나라 승상이었으므로 형식상 한나라 황제 헌제(獻帝)의 신하다. 그러나 조조가 모든 실권을 쥐고 있어 황제는 그야말로 허수아비였다. 황제를 호위한다는 명분 아래 조조 군사들이 황궁을 겹겹이 에워싸고 출입자를 일일이 체크했다. 심지어 조조의 딸을 후궁으로 들여보내 황제를 직접 감시했다. 이때 위 오 촉 세 나라는 실제 독립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형식상은 모두 한나라의 신하로서 황제를 받들어 모시는 형국이었다. 조조가 한나라의 승상으로서 천자의 이름을 빌려 천하를 호령했던 것이다.  허수아비 노릇에 앙앙불락(怏怏不樂)하던 황제가 어느 날 조조를 제거하란 밀조(密詔)를 내려보낸다. 옛날 황제가 권력 있는 신하를 제거할 때 쓰던 수법이다. 성공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조조는 물 샐 틈없는 정보망을 깔아 놓고 있었으므로 곧 발각된다. 그때 조조는 황제는 차마 손대지 않았지만 황후를 가차 없이 처단한다. 황후가 벽장 속에 숨었는데 병사로 하여금 벽장을 부수고 들어가 끌고 나가게 했다. 보다 못해 황제가 좀 인정을 베풀어 줄 수 없겠느냐고 애원해도 “만약 이번 일이 성공했으면 이 조조가 저 꼴로 끌려 나갔겠지요”하고 차갑게 웃었다 한다. 권력의 본질과 냉혹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상 조그만 인정이나 부주의 때문에 권력은 물론 목숨까지 잃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좀더 모질지 못해서 부정을 저질렀거나 조직문화에 안맞는 부하를 자를 기회를 놓쳐서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업을 위해선 사적인 인정은 버리고 더러는 과단성과 비정함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평소 아무리 착하고 아랫사람에게 잘해줘도 결단의 시기를 놓쳐 기업을 도산으로 몰고 가면 그 경영자는 악인이 되고 만다. 평소 크고 작은 인정을 베풀기보다 기업의 유지 발전이라는 큰 줄기를 키우는 것이 경영자의 책무이고 또 가장 큰 선행이기 때문이다. 


   조조가 창업공신인 순욱(筍彧)을 제거하는 과정을 보면 정말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순욱은 애초 원소 밑에서 일했으나 조조에게 옮겨와 그야말로 측근 중의 측근이 된다. 순욱이 찾아왔을 때 조조는 버선발로 뛰어 내려가 반길 정도였다. 비상한 머리와 충성심으로 조조를 잘 받들어 조조의 창업에 최고의 공훈을 세운다. 순욱은 조조 사람이었지만 자리는 한나라 천자의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 조조의 의향을 철저히 반영했다. 조조와는 일심동체(一心同體)의 관계였다. 또 개인적 신망과 명망이 높아 순욱이 조조를 위해 일한다는 것만으로 조조가 천하의 인심을 얻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순욱은 조조를 위해 좋은 인재도 많이 추천했다.  처음엔 두 사람의 뜻과 이상이 같았으나 조조의 세력이 점차 커짐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조조는 한나라의 신하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왕국을 은근히 꿈꿨다. 순욱은 조조가 한나라의 충실한 신하로 남아주기를 기대했다. 결국 두 사람의 이해가 충돌하는 때가 왔다. 조조가 승상 자리를 넘어 위공(魏公)이 되려 했다. 승상 이상의 독립된 왕국의 주인을 바랐던 것이다. 주위에서도 그걸 권했고 허수아비인 황제도 거절할 수 없었다. 조조는 순욱의 의사를 떠보게 했다.  순욱은 한 마디로 지나친 욕심이라며 반대했다. 한나라의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면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가장 옳은 길이라는 것이다. 순욱의 의사를 전해 들은 조조는 매우 화를 냈다. 순욱은 얼마 전 조조가 행정구역을 바꿔 조조의 직할 지역을 넓히려 했을 때도 반대한 바가 있어 기분이 안 좋았던 참이었다. 그러나 순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을 강행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명분 있게 순욱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조조가 남쪽으로 정벌전쟁에 나가면서 순욱을 데리고 간다. 도중에 순욱이 병이 나 조조와 떨어지게 된다. 그때 조조는 순욱을 위로한다며 음식 찬합을 하나 보낸다. 순욱이 열어 보니 빈 그릇이었다. 순욱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가 평생 헛되게 애를 썼구나”라고 탄식하며 독을 먹고 자살한다. 순욱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조조는 목을 놓아 통곡한다. 조조는 순욱에겐 경후(敬候)라는 칭호를 내려 신분을 크게 높인다. 또 아들은 자기의 사위로 삼고 순욱의 작위를 이어받게 했다. 조조로서도 정리(情理) 면에서는 순욱이 안 됐지만 원대한 포부에 장애가 되니 살려 둘 수가 없었고 천하의 이목이 있으므로 죽고 나서 후하게 대접한 것이다.  


 
출처 :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 (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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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되기 1분전에 블로깅합니다.
이제 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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