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와 렘브란트의 재테크. :: 2009. 9. 5. 18:22

 예전 고흐와 로댕의 서로 다른 사랑방식에 대해 포스팅을 한 후 두 번째 미술관련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이번에는 현대 생활에 필수적인 재테크를 소재로 화가들의 삶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재테크는 현재 모든 사람들의 화두가 될만큼 중요 요소로 자리잡았는데요. 이는 과거에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다들 비슷한가봐요. 그럼 고야와 렘브란트의 재테크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께요. 한 사람은 돈에 대해 철두철미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명예와 사치를 지나치게 탐닉하는 바람에 말년에 고생을 하게 됩니다.


 돈에 대해 철저했던 프란시스코 고야( 1746-1828 )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de Goya )는 오늘날 그 명성이 엄청납니다. Sotheby's와 Christie's라든가 그 외 경매장에 가면 고야의 작품은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죠.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가면 고야의 두 작품이 당당하게 걸려 있습니다.  모델이 동일한 이 작품은 옷을 입은 모델의 모습과 누드를 드러낸 모델이 그려져 있는데요. 바로 옷을 벗은 마하, 옷을 입은 마하 이 작품들입니다. 당시 이 작품이 발표될 때 고야는 엄청난 비판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옷을 벗은 마하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모델의 당당하고, 도발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야가 초상화를 많이 그려낸 만큼 이 두 작품 역시 초상화인데요. 초상화 특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 작품은 여성의 탐스러운 젖가슴과 잘록한 허리, 풍요로운 허벅지를 담담하게 표현해 냅니다. 오늘날 헤어누드라고 해서 성기의 음모부분을 노출한 모델의 사진은 따로 분류를 하잖아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에서는 음모부분까지도 여과없이 드러냅니다. 당연히 외설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당시 이로 인해 고야는 명예가 실추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오늘날 고야의 가장 유명한 두 작품은 바로 이 외설시비를 불러일으킨 작품이에요. 그림으로 일단 감상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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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ya's La maja desnuda- Del Prado Museum, Madrid All Rights Reserved.

▲옷을 입은 마하입니다. 1798~1805 캔버스에 유채, 97x190 (클릭하면 크게 볼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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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ya's La maja desnuda- Del Prado Museum, Madrid All Rights Reserved.

▲옷을 벗은 마하입니다. 1798~1805 캔버스에 유채, 95x190(클릭하면 크게 볼수 있어요-_-)


 고야의 초상화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고야는 철저하게 관찰자적 입장에서 모델이 가지고 있는 왜곡할 수 없는 진실을 그려냅니다. 그래서 고야의 작품을 보게 되면 당시의 생활상이라든가 역사 등을 알 수 있는데요. 옛날에는 사진기술이 형편없어서 화가의 그림이 개인의 역사와 국가역사까지 기록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묻혀버릴 삶의 기록이 화가의 손에 의해 살아나는 것은 상상만 해도 흥미진진하잖아요. 그래서 서양에서는 역사를 기록하는 화가는 항상 정치권이나 상류층 곁에 있었고, 그렇기에 다른 계층보다 출세하는게 수월했습니다.


 고야는 처음 왕실에서 주문받아 태피스트리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1772년 첫 프레스코화가 완성되면서 천재성이 드러나는데요. 자신이 도움을 받았다면 반드시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고야는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했습니다. 강박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의 재정문제를 염려하고 고민한 고야는 궁정화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궁정화가에겐 월마다 들어오는 궁정비(월급)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어느 정도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음은 물론이요, 왕족 및 귀족들에게 초상화 주문을 쉽게 받을 수 있으니 부(富)를 축적하기에 안성맞춤이었어요.

 고야의 천재성에 감탄한 상류층들은 차츰 고야에게 초상화 주문을 하게 되고 이런 상류층들의 관심은 고야의 인생을 바꿔 놓습니다. 1789년 고야는 마침내 오랫동안 기다려온 궁정화가로 임명이 됩니다.

어디다 투자하면 좋을지 가르쳐주게. 은행이든, 왕실이든, 채권이든 기업체이든, 아무데고 이윤이 가장 많이 나오는데로 말야... (1789년 5월 23일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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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L 금지

 현실에 발목을 잡혀 그림을 포기할 수밖에 없던 화가들을 많이 보면서 안타까워했던 고야는 예술의 자유는 경제적 자립에 달려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돈이야말로 그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던 고야는 타고난 천재성과 더불어 실리적인 감각까지 겸비한 화가였다고 볼 수 있어요. 고야는 끊임없이 투자전문가를 만나 자신의 재정문제를 상담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점점 부를 축적해 나갑니다. 하지만 지배세력의 변화로 고야는 무려 7년간이나 추방당해 생활하게 됩니다. (당시 나폴레옹 시대죠) 정치적 변화가 고야를 외진 구석으로 내몰았는데요. 하지만 고야는 어긋난 인생을 바로잡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좌절하지 않고 후원자를 찾아 계속 그림에 몰두하게 되죠. 고야가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축적한 재산 덕분이었습니다. 정치로비에 능했던 고야는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얻은 지위와 신망, 명예를 잃고 싶지 않아 자기 주변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신중히 행동합니다.

 고야는 40대 중반 이후 앓기 시작한 병때문에 청각을 잃게 됩니다. 언제나 그림이 최우선이었지만, 병을 앓으면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린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재정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고야는 자신이 죽던 마지막해까지 돈을 아들명의의 계좌에 넘기는 일을 투자전문가와 의논할 정도로 경제관념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 (1606-1669)

 렘브란트( Van Rijn Rembrandt )는 부와 명성을 일찍 얻었지만, 낭비벽때문에 말년에 고생을 하는 화가입니다. 그래서 미술관에 가서 그의 작품을 관람하게 될 일이 생긴다면 렘브란트의 초기적 작풍과 후기 작풍이 다른데요. 이건 그의 재정상태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고야보다는 렘브란트가 좀 더 마음에 들기 때문에 이 부분은 좀 안타까운 대목이기도 해요.

 렘브란트 역시 관찰력이 뛰어난 화가였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기록을 벗어나 초상화를 예술로 승화시킵니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의 부유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평범하게 인생을 영위하기엔 그의 야망이 너무나 컸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았던 렘브란트가 꿈꿔온 것은 명성이었습니다. 렘브란트의 재능을 알아본 화상의 주선으로 그림 주문을 받게 되는데, 당시 유명한 40세의 튈프 교수가 수행하는 해부학 강의를 그려달라는 것이었어요. 이 작품은 렘브란트가 원한 명성을 가져다 줍니다. 렘브란트는 20대 초반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가 꿈꾸었던 사회적 지위는 좋은 집안 출신인 사스키아와 결혼하면서 이뤄집니다. 방앗간집 아들이었던 렘브란트가 마침내 고위관리를 처남으로 두게 된 것입니다. 렘브란트는 사랑과 부, 명성을 모두 움켜집니다.

정의로운 사람은 부보다 명예를 소중히 한다. ( 1634년 편지 )


렘브란트의 아내 사스키아는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그의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모델입니다. 그녀는 도시의 중간계급으로 확고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사치스러웠어요. 게다가 여기에 더해 렘브란트 역시 사스키아의 지참금을 믿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무리해서 집을 구입할 정도로 명예를 소중히 여겼으니 어쩌면 이들의 결혼 생활은 시작부터 파국에의 정점을 달리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네요. 어쨌든 렘브란트는 한창 잘나가는 화가였기에 주문이 끊이질 않았고, 덕분에 상당한 돈을 벌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의 수입보다는 집, 옷, 예술품 수집 등 자신의 명성에 걸맞는 것을 좀 더 원했습니다. 그래도 여기서 그쳤다면 사치스러웠어도 벌어들이는 수입이 워낙 많았기에 괜찮았을 겁니다.

 렘브란트를 천재라고 했잖아요. 범인의 머리로는 천재의 행동을 가늠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렘브란트가 꼭 그랬습니다. 그의 불타는 예술혼은 단순히 명성에 만족하질 않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느낌으로 모델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초상화에 익숙했던 바이어들은 차츰 렘브란트의 그림을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서 초상화 주문도 끊기게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절제하지 않습니다. 계속된 낭비 때문에 렘브란트는 결국 파산하게 되고, 채권자들은 빚을 돌려받기 위해 렘브란트를 법정에까지 세웁니다. 금융시장과 은행, 상거래가 활발한 암스테르담 사회에서 낭비를 일삼는 렘브란트의 생활상은 용서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사람들은 렘브란트의 그림에 관심조차 없었고, 그를 힐난하기에 이르릅니다.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렘브란트의 마지막 보루는 사스키아의 유산이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유언에 렘브란트가 재혼을 하면 유산상속 자격이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렘브란트에게는 사스키아의 유산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꼭 필요했어요. 그렇기에 렘브란트는 2번째 아내인 헨드리카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못합니다. 헨드리카는 가난하고 평범한 집안의 착하고 어린 19살 신부였습니다. 아이의 유모였던 헨드리카의 외모가 사스키아와 많이 닮아서 나이  4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렘브란트는 불같이 그녀에게 빠져들었던 거에요. 렘브란트는 사스키아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작품 모델로 자주 등장시킵니다. 하지만 사스키아가 장식적이고 화려하게 그려졌다면, 헨드리카는 꾸밈없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재정상태와 연관이 있는 부분이지요.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말년에 렘브란트는 빵을 사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고,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화상을 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화상은 말년의 렘브란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진 않습니다. 절망속에서도 화가로서 자기 자신만의 색채를 버리지 않고 화가로서의 자부심을 보여줍니다. 역시 끝까지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는 렘브란트답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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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rmitage, St. Petersburg All Rights Reserved.

▲ Saskia as Flora 1634 캔버스에 유채. 125 x 101 (transferred to new canvas) 
장식이 화려하죠. 부유층의 면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런던 국립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제가 올린 그림은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소재한 Hermitage 미술관의 것이에요. Hermitage하니까 에르미타쥬 2001 와인이 생각나네요. 이름이 똑같아요.^^

http://www.hermitagemuseum.org/ - Hermitage 미술관 사이트입니다. IBM이 후원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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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Gallery London UK.All Rights Reserved.

▲Hendrickje Bathing in a River 1655, 목판에 유채, 61x47
헨드리카의 모습이에요. 사스키와와는 달리 꾸밈없는 모습입니다.  비교적 최근 칸딘스키 전이나 모딜리아니전도 끝났는데, 기회가 다시 온다면 무조건 시간내서 관람하고 싶네요.ㅜㅜ


 이 글은 HSBC 프리미어 가입시 제공되는 THE VALUE 매거진에 수록된 글입니다. 글이 너무 좋아 소개하고자 합니다. 혼자 보기 아까운 측면도 있었고 해서요. 이전 로댕과 고흐의 사랑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원글을 쓴 분께 메일을 보내 허락을 득하고 올렸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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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hobaktoon.com BlogIcon 호박 | 2008.06.05 19:0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째 옷을 입은 마하눈빛이 더 부끄러워 하는듯합니다^^ 하하하~

    오늘밤부터 촛불은 더 뜨거워질꺼라지요~
    100만 촛불을 위하여.. 화이팅 해주세효^^

    즐건밤 되시고욘~

    • Favicon of http://fafagel.com BlogIcon 아도니스 | 2008.06.07 17:43 | PERMALINK | EDIT/DEL

      도발적인 시선인데 얼굴에 홍조가 스며 있어서 부끄러워 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네요.^^

      촛불문화제도 참여하시나봐요. 저는 바빠서.ㅋ~
      어찌되었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주말 잘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s://dokspromotion.tistory.com BlogIcon 독스(doks) | 2008.06.06 19:51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화가들도,, 재태크에 관심이 많았군요. 저도 제태크할수있는게 생기면 좋겠습니다. ( 제태크는 있어서하는게 아니라, 있기위해 한다던데 .. ) ㅎ

    • Favicon of http://fafagel.com BlogIcon 아도니스 | 2008.06.07 17:46 | PERMALINK | EDIT/DEL

      마지막 말씀이 맞아요.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잡느냐? 혹은 지닌 돈을 불리기 위해 직장을 선택하느냐? 와도 비슷한 맥락일 듯 싶어요.

      고야의 경우 성공적인 자산관리가 이뤄졌지만, 렘브란트는 그 자신의 허욕(?)때문에 말년을 힘들게 보냈죠.

  • 알 수 없는 사용자 | 2008.06.07 16:4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어느시대에나 재테크는 중요했군요. ^^

    • Favicon of http://fafagel.com BlogIcon 아도니스 | 2008.06.07 17:47 | PERMALINK | EDIT/DEL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곳은 똑같잖아요.^^
      미래에도 여전히 재테크에 혈안이 된 사람은 여전히 있을 듯 해요.

  • Favicon of http://mckdh.net BlogIcon 산골소년 | 2008.06.07 20: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아도니스님의 박학다식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아도니스님의 박학다식은 다독에서 나오는거죠?
    삼국지에서 유럽 미술사까지..흠냐..
    갑자기 독서의 욕구가 용솟음 치는데요.. 이거 다음블로거뉴스 안올리셨어요? 추천하려고 했는디..
    이런글이 잘 통할텐대요~ ^ ^

    • Favicon of http://fafagel.com BlogIcon 아도니스 | 2008.06.07 22:34 | PERMALINK | EDIT/DEL

      으아!! 얼굴 화끈거리게 왜 이러세요.^^
      이 번 포스팅과 삼국지 경영학 관련해서는 제가 읽은 것을 옮겨온것에 불과한데.. 이렇게 칭찬받으니까 민망하네요.ㅋ~

  • Favicon of http://foxer.tistory.com BlogIcon foxer | 2008.06.08 19: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앗 마지막 블록을 보고 깜짝 놀랐네요;;ㅋ
    누가 적었든지 간에 좋은 글이라서 잘 보았습니다 :)
    역시 재테크는 젊을 때부터 해놔야 하는거 같아요.
    저야 화가들처럼 프리랜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언제 짤릴지 모르는 직장인이 될터이니;;

    • Favicon of http://fafagel.com BlogIcon 아도니스 | 2008.06.10 21:26 | PERMALINK | EDIT/DEL

      그런데요. 재테크가 무조건 어렸을 적부터 하는게 좋은 건 아니라고 하네요.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말에 의하면 부의 단계는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1번째 단계로 의식주에 구애받음이 없이 만족스러운 활동을 할 수준이고(대다수의 서민층이겠죠), 2번째 단계가 자신을 벗어나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만족을 줄 수준(예를 들면 자녀의 해외 유학, 교육, 결혼후 주택장만등 - 대개의 중산층 이상 가족- 100억이상)이랍니다.
      이 2가지 단계의 부를 쌓기 위해선 재테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3단계 부는 재테크를 염두해선 쌓을 수 없는 부라고 하더군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부-이미 가지 고 있는 재산이 사회를 선도해 감-라고 하는데 이경우 재테크보다는 특출난 아이디어난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명운을 걸고 도박을 감행하는 거라고 합니다. 대개 포브스 100대 부호에 속해 있는 분들(자수성가)이 여기에 속하겠죠.

      뭐... 푸념해봐야 되나요. 열심히 돈을 축적해야죠.ㅋㅋ

  • Favicon of http://pustith.tistory.com BlogIcon 맨큐 | 2008.06.10 15: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유명한 경제학자들 중에는 자신의 재산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파산한 분들도 계시죠.
    그런 면에서 고야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듯..ㅎㅎ

    • Favicon of http://fafagel.com BlogIcon 아도니스 | 2008.06.10 21:28 | PERMALINK | EDIT/DEL

      신기한게 경제학자들 중 부유한 사람이 거의 없죠. 주식투자로 돈을 번 케인즈라던가, 앙드레 코스톨라니 같은 경우를 빼면... 뭐랄까.. 하여튼 신기한 것 같아요.

      저는 흥청망청이어도 폼 하나에 죽네사네한 렘브란트에게 더 호감이 갑니다.^^

  • Favicon of http://echoya.com BlogIcon 에코 | 2008.06.10 16:36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근데 아도니스님 예술에 관심이 참 많으신듯
    부럽
    전 예술방면은 봐도 봐도 헷갈리던데 ㅠ

    • Favicon of http://fafagel.com BlogIcon 아도니스 | 2008.06.11 22:21 | PERMALINK | EDIT/DEL

      계속 보다보면 구별할 수 있는 것들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주 접해보려고 하는데 저도 많이 헷갈리네요.^^

  • Favicon of http://ch0hamuseum.net BlogIcon 초하 | 2008.06.14 10:38 | PERMALINK | EDIT/DEL | REPLY

    관련 글을 올렸을까 생각하며 들렀다가 반가운 그림들을 마주합니다.
    리움에 다녀온 감상후기도 궁금하답니다. 사실은... ^^
    관련 글들 엮어보려 합니다.
    벌써 시작된 주말... 특별한 계획??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fafagel.com BlogIcon 아도니스 | 2008.06.17 19:37 | PERMALINK | EDIT/DEL

      요즘 바빠서 블로그 관리를 소홀히 했어요.
      조만간 올려야겠네요.^^
      관련글 많이 엮어주셨네요. 노트북이 없어서 PC방에서 댓글 달고 있어요.^^

  • 은솔 | 2008.06.23 00: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이 넘 좋은데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

    • Favicon of http://fafagel.com BlogIcon 아도니스 | 2008.06.23 19:06 | PERMALINK | EDIT/DEL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이 맘에 들었다니 선곡한 기쁨이 크네요.^^
      흘러나오는 음악은 두스코 고이코비치의 No more blues에요. 예전 음악 카테고리에 이 곡을 포스팅해뒀으므로 좀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fafagel.com/360

      댓글 달아주실때 홈페이지나 블로그 주소가 있다면 URL도 같이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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